[백세시대 / 세상읽기] 인요한의 “참을성”
[백세시대 / 세상읽기] 인요한의 “참을성”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11.13 11:16
  • 호수 8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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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며칠 전 인요한(64)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면전에 대고 영어로 면박을 줬다. 인 위원장을 ‘미스터 린튼’이라고 칭하면서 “환자는 서울에 있다”고 했다. 

이런 행동의 저변에 깔린 의도는 “당신이 아무리 한국서 태어나고 60여년을 살았어도 미국인은 미국인이고, 나는 환자가 아니고 진짜 환자(윤석열 대통령)는 서울에 있다”라는 점을 인식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인요한 위원장은 우리말을 웬만한 한국인보다 더 잘한다. 말소리만 듣고선 외국인이란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따라서 그날 영어가 필요 없었다. 그런데도 이 전 대표는 굳이 영어로 자기 할 말을 해버렸다. 인 위원장은 당황스러움과 불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듣고만 있었다.   

인요한은 수년 전 백세시대 인터뷰에서 어릴 적 얘기를 들려주었다. 

“제가 전주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컸다. 당시는 전기가 오락가락하던 시절이었다. 온돌방 아랫목에서 어른들로부터 벼는 언제 심고, 언제 베고, 장마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부터 여순반란사건, 6·25 전쟁 얘기까지 다 들었다. 한국인에게 가장 고맙게 받은 선물이 어르신에게서 배운 도덕과 양심이다. ‘사람이 그러면 못 써’라는 말이다. 그 말이 제 인생의 내비게이션이다.” 

그런즉슨 한국의 예절과 풍습,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익힌 셈이다. 요즘 핵가족 시대에 할아버지·할머니 품을 모르고 자란 젊은 세대보다도 더 도덕적이고 더 윤리적이며 더 한국적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인 위원장은 노인세계에도 관심이 많다. 기자와 마주앉자마자 대뜸 “노인의 나이를 올려야 해요. 요즘 일하는 분들도 얼마나 많고 액티브해졌는데”라고 운을 떼기도 했다. 

‘한국의 노인자살률이 왜 유독 높은가?’에 대해서도 “이게 한국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미국이 혁명적으로 바뀔 때가 1900년대 초였다. 그게 왜 가능했냐면 ‘키친 스토브’(Kitchen stove) 덕이라고 한다. 미국도 당시는 난방을 다 못해 부엌의 화목난로 앞에 온가족이 모였다. 아이가 숙제를 하면서 형에게 물어보고, 엄마 아빠가 거들어주었다. 한국의 온돌방과 같은 거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이 자기 방에 들어가 문 닫고 게임하고 인터넷하면서 나오지를 않고 ‘방콕’을 한다. 아파트의 중앙난방과 ‘방콕’이 한국의 온돌방 문화를 날려버렸다. 노인들이 자기가 필요 없는 존재라는 걸 느끼는 순간처럼 비참한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소외감과 외로움, 시대조류에의 부적응 등이 노인을 자살로 몰고 간다는 요지다.

주위에서 늘 궁금해 하는 점 중 하나가 과연 얼마만큼 자신을 한국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는 “늘 제 안에서 부딪치는 문제이다. 한국인과 있으면 미국 생각이 좀 이상하고, 미국인과 있으면 한국을 좀 멀리하게 되고… (수련의 과정 중) 정신과를 돌 때 스스로 분석하는 시간이 있었다. 결국 ‘이건 난센스다, 나는 나다’라고 결론을 냈다. 한국·미국의 문화가 각각 장점이 있는데 안에서 싸우는 거 그만 두고 ‘나는 나다’고 정리하자 편해졌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스스로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재차 묻자 그는 “전라도 사람이다. 왜냐면 우리 조상이 리 장군으로 대표하는 미국 남부 조지아주, 브레이브 하트의 스코틀랜드 사람이다. 한국의 고향은 순천이고…”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인 위원장은 어릴 적 만난 노인을 늘 기억에 두고 있다. 

“자주 놀러가던 동네 할머니가 계셨다. 그분이 해준 말 중 ‘남들이 너한테 실수를 했을 때 상대에게 함부로 면죄부를 주지 말고 너 자신을 지키라’는 말이 항상 머리에 남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점잖게 있으라’는 거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화를 내고 오해를 하더라도 함부로 반격하지 말고 참으라는 말이다. 그 사람이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주라는 얘기지.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알려지는 법이니까.”

인요한 위원장은 이 시간 이준석 전 대표가 자기에게 한 신사적이지 못한 행동과 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할머니의 교훈을 머리에 떠올리고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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