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빗방울에는
물의 한 생애가 새겨져 있다
각각의 지문인 듯
저마다의 기분인 듯
그날그날의 나이테인 채로
비 오는 날 가만히 빗방울을 관찰해 보면 유성처럼 내리꽂히는 물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흙을 파헤치고 마지막 절규인 것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부서지면서 만드는 파문을 본다면 비의 본성은 원래 둥글둥글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작은 빗방울이든 굵은 빗방울이든 모든 빗방울은 마지막에 제 생애를 어떻게든 남긴다. 어떤 빗방울들은 한순간 자신의 전 생애를 물 위에 새겨 보여주는 것으로 비의 생애는 끝이 난다. 그건 마치 제 자신의 지문인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인 것 같기도 제 나이테인 것 같기도 하다.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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