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슬픈 튤립이야기 / 오경아
[백세시대 금요칼럼] 슬픈 튤립이야기 / 오경아
  • 오경아 가든디자이너
  • 승인 2023.11.27 10:14
  • 호수 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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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가든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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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종 튤립의 알뿌리 하나가

집 한 채 값으로 폭등했던 1637년

네덜란드 경제는 붕괴하기 시작

식물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이길 바라

늦가을은 알뿌리를 심는 계절이다. 튤립의 자생지는 키르기스스탄과 그 인근 중국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사막형 기후에 특화된 이 식물은 모래땅을 좋아한다. 사실 튤립은 장미만큼이나 전 세계 애호가, 일명 마니아가 많다. 

훗날 튤립은 지금의 튀르키예인들의 조상인 오스만 제국의 상징이 되어 왕실은 물론 전 국민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식물을 독점하고 싶어서 오스만 제국은 나라 밖으로 튤립이 반출되는 것을 철저하게 막았다. 이 때문에 유럽이 이 꽃을 얻을 때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삼엄한 경계를 뚫고 반출에 성공한 사람은 바로 합스부르크 제국의 외교관이었던 오기에르 기슬랭 부스벡(Ogier Ghiselin de Busbecq)으로 그는 빼돌린 알뿌리를 네덜란드 레이든 대학의 내과 의사이자 식물학자였던 카를루스 클루시우스(Carolus Clusisus)에게 전달한다.

클루시우스는 이 알뿌리를 자신이 재직하고 있던 레이든 식물원에서 키웠고, 뿐만 아니라 신품종을 만드는 데에도 성공한다. 이것이 네덜란드에 튤립이 전달된 사연이고, 드디어 서유럽이 튤립을 얻게 된 이야기다. 

하지만 튤립이 네덜란드는 물론 전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이로부터 한 세기가 흐른 뒤인 17세기다. 이때 네덜란드는 ‘경제황금시대’를 맞아 전 세계를 누비는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바로 그 무역에서 가장 큰 효자 노릇을 했던 물품이 바로 튤립이기도 했다. 

당시 희귀한 튤립 알뿌리는 일반 노동자의 1년 치 월급, 작은 집 한 채 가격이었다. 돈이 좀 있는 귀족이라면 이 튤립 알뿌리를 사들이는 게 흔한 일이었고 이게 경제적으로는 세계 최초의 ‘선물시장’이었다. 

아직 알뿌리는 땅속에 있고, 꽃이 핀 것을 보지도 않은 채 선거래로 사고 팔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운명적 사건이 1637년에 발생한다. 가장 비싼 가격에 판매된 ‘Tulip Semper Augustus’ 종의 알뿌리가 썩으면서 판매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셈퍼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의 이 튤립은 빨간색과 흰색이 마치 붓 터치를 한 듯 섞여 있는데, 이게 실은 붉은 튤립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색상을 잃으면서 생긴 증상이라는 걸 당시는 알지 못했다. 

1637년 2월 3일, 네덜란드 선물시장은 그간 소문으로만 돌던 튤립 알뿌리의 ‘썩음 병’ 소식이 드디어 수면으로 올라오고, 이후 불과 일주일도 안돼 2월 9일 드디어 시장 전체가 붕괴를 맞게 된다. 이 붕괴는 연쇄적으로 네덜란드 경제를 강타하면서 이른바 ‘버블 사태’로 번지는데, 이때를 경제학자들은 17세기 막강했던 네덜란드의 힘이 기울어진 계기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선물시장 파동은 튤립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1737년에 불었던 히아신스 파동, 그 이후로도 백합, 글라디올러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큰 경제 사건을 일으킨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무슨 알뿌리가 집 한 채 가격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건 네덜란드만의 일도, 그 옛날의 일만도 아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도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난이 거래되고, 희귀한 색과 모양을 지닌 다육이나 분재가 고가에 거래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고, 희귀성이나 특별함이 가치로 인정되면 고가가 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가 행하는 소비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필요’, 하나는 ‘선호’로 전자가 먹고 사는데 꼭 필요한 생필품이라면 후자는 기호, 선호 물품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식물은 과연 이 가운데 어떤 카테고리일까? 식물은 과연 필요품일까, 선호품일까? 

터무니없는 고가에 거래된 세상에서 가장 예뻐서, 가장 비쌌던 튤립이 실은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어가던 중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온다. 이건 분명 필요가 아니라 ‘선호’의 물품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더 슬픈 것은 네덜란드 경제를 붕괴로 내몰았던 그 변종 튤립은 지금도 튤립 농장에서 종종 발견된다는 것이다. 농부들은 이 종이 나타나면 바이러스가 번졌다는 것을 감지하고 바로 제거에 나선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식물을 우리 가까이에 두는 일은 분명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그래서 바라건대 나는 이 정원 문화가 ‘좋아서’가 아니라 ‘필요해서’로 바뀌기를 바란다. 

터무니없는 가격의 고가 식물이 나타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생필품처럼 소비되는 식물 시장이 생겨나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 이 막막한 기후 변화 속에 우리의 생존이 조금은 보장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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