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중국 대학생들이 낭송하는 ‘향수’”
[백세시대 / 세상읽기] “중국 대학생들이 낭송하는 ‘향수’”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12.04 11:15
  • 호수 8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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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기자는 매일 1만보 이상을 걷는다. 소처럼 느리게 걸어 2시간 가까이 걸린다. 처음에는 시간이 잘 가지 않고, 걷는 게 힘들고 지루했으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비결은 노래다. ‘애수의 소야곡’, ‘사철가’, ‘데스퍼라도(Desperado)’ 등 창(唱)서부터 가요, 팝송까지 다 불러 젖힌다. 무려 30여곡으로 가사를 다 외운다. 

이 레퍼토리를 한 바퀴 돌리면 얼추 하루 운동량을 채운다. 노래도 부르고 건강도 유지하고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덤으로 목소리도 트인 듯하고, 노래 부르는 기량도 터득했다. 호흡이 길어지고, 바이브레이션도 살짝 된다. 천부적 재능이 있어야 노래를 잘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반복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득음(?)이 되는 가 보다. 

걸으면서 부르는 노래 가운데 ‘향수’(鄕愁)가 있다. 정지용(鄭芝溶·1902~1950년) 시인의 시에 작곡가 김희갑이 곡을 붙인 것이다. 성악가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불러 앨범이 100만장 이상 팔리는 등 화제가 됐다. 가사와 멜로디 모두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연주 시간 4분을 넘기는 노래를 어떻게 외우나 걱정했지만 노트에 적어보기도 하고, 외어지지 않는 부분은 되풀이해 부르다보니 암송이 됐다.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 쉬는 곳”,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등등이다.

반면에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와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 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이라는 구절은 복잡한 도시 속 현대인에겐 낯설다. 말을 타는 일이 거의 불가능한데다, 화살을 쏘고 그걸 주우러 이슬이 촉촉한 풀 속을 헤매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 구절을 따라 부를 때는 삭막하고 허허로운 만주벌판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향수’를 따라 부르며 정지용이 ‘멋있는 사람’이란 걸 새롭게 느꼈다. 그것은 한국인만의 취향이나 선호도가 아니었다. 외국인도 정지용의 시에서 똑같은 감흥을 받는 듯하다. 그의 시가 젊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애송되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16~19일에 중국 항주와 상해 일원에서 ‘제24회 중국 지용제’가 성황리에 열렸다. 여기에 황규철 옥천군수와 이병우 옥천군의회 부의장, 유정현 옥천문화원장, 군의원, 공무원, 민간인 등 34명이 참가했다. 옥천문화원과 절강성 인민 대외우호협회가 주최하고, 항주사범대학교가 주관했다.

황 군수는 “중국 지용제는 정지용 시인의 시문학에 관한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외부 콘텐츠 강화를 위해 열리고 있다”고 했다.

이번 중국 지용제는 정지용 국제 학술 세미나, 정지용 시 낭송대회, 정지용 한글 백일장 등 문학 행사와 한국문화 알리기 행사 등으로 꾸몄다. 

행사에 참석한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중국 학생들은 거의 경극(京劇)하듯이 정지용 시를 낭송했다. 시와 영상이 흐르는 대형 화면을 배경으로 중국인 남녀 두 학생이 ‘향수’를 중국어로 한 번, 한국어로 한 번 낭송했다”고 전했다.

항저우사범대에 ‘정지용연구센터’를 세운 유춘희 교수는 “처음 정지용 시 낭송회를 했을 때는 20여개 대학이 참여했는데 이제는 저장성, 산둥성에 있는 40여개 대학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대부분 ‘향수’를 따라 부를 때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타는 목마름을 느끼는 구절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후렴구로 5번이나 나오는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구절이다. 이 노래의 ‘백미’(白眉)이기도 하다. 어릴 적 실개천이 휘돌아나가던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과 동무들과의 추억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흥얼흥얼 따라 부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부분에서 하릴없이 눈물이 흐를 것 같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여러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울리는 것을 보면 정지용은 대단히 감수성이 풍부한 시인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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