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익히는 게 ‘스마트경로당’인가
키오스크 익히는 게 ‘스마트경로당’인가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12.11 08:59
  • 호수 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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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된 대한노인회 스마트경로당 표준안… “현실과 안맞는 탁상공론”

중앙회, 11월 24일 설명회… 과기부 추진 사업 비판했지만 ‘도긴개긴’

막대한 예산 드는데다 구체적 운영‧관리 방법 제시 안 해 효과 의문

지난 11월 열린 시니어라이프스타일박람회에서 한 어르신이 대한노인회 스마트경로당 표준안 부스를 둘러보는 모습.
지난 11월 열린 시니어라이프스타일박람회에서 한 어르신이 대한노인회 스마트경로당 표준안 부스를 둘러보는 모습.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2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지난 11월 24일 서울 강남구 SETEC(세텍)에서는 시니어라이프스타일박람회 행사 중 하나로 ‘대한노인회 스마트경로당 표준안 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한 참석자가 중앙회 주도로 추진 중인 스마트경로당 표준안이 10년 내 완료될 수 있을지 질의했는데 주최 측에서 이렇게 답한 것이다. 이는 현재 ‘대한노인회 스마트경로당 표준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답변이다. 한 참석자는 “20년이 걸릴 수도 있는 사업인데 내놓은 대안은 키오스크 중심의 근시안적 방법에 불과하다”면서 “현실적으로 6만8000개 경로당을 연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공개된 대한노인회 스마트경로당 표준안 계획서는 과기부 주도로 2021년부터 추진 중인 ‘스마트경로당 구축 사업’이 대한노인회와 사용자인 노인을 배려하지 않은 방식이라고 비판하며 시작된다. 이어 노인복지 관계자의 기획이 아닌 경로당 사용자 중심으로 설계된 스마트경로당 표준안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대한노인회 스마트경로당 TF팀이 설계했다는 스마트경로당 표준안(이하 표준안)을 제시한다. 표준안은 경로당에 키오스크와 인터넷 환경 그리고 경로당 전용 채널을 시청할 수 있는 대형TV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키오스크’는 공공장소 등에 설치된 무인 정보 단말기로, 주로 정부 기관이나 은행, 백화점, 전시장 등에 설치되어 있으며, 대체로 터치스크린 방식을 사용한다. 최근엔 음식점 등에서 주문, 결제할 때 많이 사용한다.

또 이를 중앙에서 통제하는 CMS(전국공통운영체제)를 두면 전국의 경로당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인 주문 연습 외에도 다양한 기능이 탑재될 키오스크를 이용해 치매 예방을 위한 인지활동 프로그램, 영상을 통한 운동프로그램, 원격 진료 등을 할 수 있고, CMS를 통해 노인회‧지자체 소식 및 각종 복지 정보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는 내용도 실려 있다. 이와 함께 경로당 전문 채널에서 제공하는 각종 여가프로그램을 언제든지 시청하며 즐길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문제는 기술적으로 가능한지도 중요하지만, 이 시스템을 전국 모든 경로당에 설치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가이다. 실제로 이날 설명회에서도 지자체의 빠듯한 살림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또 정권이 바뀌거나 지자체장이 바뀌었을 시 유지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표했다. 설명회 주최 측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번 표준안의 핵심은 ‘키오스크’다. 설명회에서도 현재 노인들이 키오스크 사용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각종 음식점의 무인단말기 주문 화면을 넣어 경로당에서 눈치 보지 않고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설명회가 진행된 박람회장에는 여러 업체가 개발한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어 시연할 수 있었다. 비용을 떠나서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식당이 인접해 있는 도시 경로당에 설치하면 어느 정도 효과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전체 경로당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농촌 경로당의 경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표준안의 또 다른 문제는 운영‧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 제시가 없다는 것이다. 키오스크는 먹통이 되는 경우가 잦은데 경로당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 발 빠르게 대처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또 지회 경로부장 등 외부 젊은 사람들의 도움 없이 이를 잘 활용할 수 있을 지도 사실상 미지수다. 실제로 여러 지회에서 경로당 전산화를 위해 중고 컴퓨터 등을 보급하고 있지만 사용법을 몰라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즉, 경로당 회원들의 삶을 스마트하게 바꿔주는데 방점이 찍혀 있지 않고 디지털 하드웨어 구축에 열을 올리는 형국이다. A노인회 관계자는 “경로당에 좋은 의도로 디지털기기를 설치하려고 해도 대부분 사용하지 않고 방치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현재 스마트경로당의 성공적인 롤모델로 평가받는 대전 유성구지회(지회장 신기영)도 경로당 별로 스마트경로당 프로그램을 운영‧관리해주는 매니저를 배치한 것을 주요 성공 요인으로 꼽고 있다. 유성구지회 관계자는 “애초에 스마트 매니저를 배치하지 않았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6만8000개 모든 경로당에 설치해 연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탁상공론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경로당은 시설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넓은 공간이 필요한 프로그램을 아예 운영하지 못하는 곳도 많다. 또한 여러 사정으로 애초에 경로당이 스마트 경로당으로 바뀌는 것을 희망하지 않는 곳도 있다. 

내년에 전국 최다인 120개소로 스마트경로당을 확대하는 유성구지회 역시 전체 190여개 경로당 중 희망하거나 설치가능한 곳에만 보급했다는 설명이다. B노인회 관계자는 “운영비와 부식비를 더 달라고 하지, 먼저 요구하지도 않는 스마트 기기를 설치해주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표준안이 경로당의 현주소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막연한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며, 이를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대한노인회의 역할인지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한 노인회 관계자는 “냉난방비 전용, 시설기준 마련 등 경로당의 오랜 숙원과 연합회‧지회 직원 처우 개선 등 해결해야 할 문제는 등한시한 채 개념조차 막연한 스마트경로당 조성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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