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초저출산 추세로 인한 국가 소멸의 위기 / 서상목
[백세시대 금요칼럼] 초저출산 추세로 인한 국가 소멸의 위기 / 서상목
  • 서상목 국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3.12.11 11:40
  • 호수 8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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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목국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서상목 국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모든 아이는 국가 책임’ 공감대

동거 커플에 차별 없는 혜택으로

혼외 출산율 높인 유럽 참고해야

이민정책 적극적으로 바꾸는 등

한국도 획기적 대책 강구할 필요

최근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30대 여성이 결혼조건으로 내세운 것이 신랑의 정관수술이라는 것이다. 결혼은 해도 애는 절대로 낳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한국 젊은 여성들의 결혼 또는 출산 거부 심리는 출산율 통계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금년 3/4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사상 최저치인 동시에 국제적으로도 가장 낮은 수치이다. 금년 9월 출생아 수는 1만9000명, 사망자는 2만8000명으로 불과 한달 사이에 인구가 9000명이나 줄었다. “빼앗긴 국가는 되찾을 수 있어도, 소멸한 국가는 되찾을 수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실제로 옥스퍼드 대학 데이비드 콜먼(David Coleman) 교수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소멸 국가 1호’가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고 인구 감소의 심각성을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출산율 하락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2136년 한국 인구는 지금의 5분의 1도 안 되는 1000만명으로 줄어들고, 2256년에는 100만명 아래로 감소해 대한민국이 사실상 소멸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인구감소를 방치했다가 멸망의 길을 걷게 된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예를 들어, 군사적으로 무적의 스파르타를 무너뜨린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인구 소멸’이라는 내부의 적이었다. 

로마제국이 국경을 지킬 수 없었던 것도 이미 인구가 심각한 수준으로 급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저출산 추세를 겪고 있는 대다수 선진국들은 인구정책에 막대한 국가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내총생산 대비 가족복지지출 비중이 한국은 1.56%인데 반해, 프랑스는 3.44%나 되고 OECD 평균 역시 2%가 넘는다. 

최근 유럽국가들의 상황을 살펴보면, 혼외 출산율 증가가 출산율 증가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2018년의 경우 혼외 출산율은 OECD 평균이 40.7%로 높은 반면, 우리나라는 이의 20분의 1 수준인 2.2%였다. 특히 저출산 정책의 성공사례인 프랑스와 스웨덴은 혼외 출산율이 각각 60.4%와 54.5%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낮은 혼외 출산율은 높은 수준의 낙태와 기아(棄兒)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현재 전체 입양아동 중 미혼모 아동의 비율은 국내 83.1%, 국외 99.6%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모든 아이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임신 시기부터 정부 지원을 강화하고, 특히 미혼모와 미혼부에 대한 인식 개선과 지원을 강화하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출산율 제고를 위해 프랑스는 1999년 ‘시민사회연대(PACS)’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를 선택한 동거 커플은 법적으로는 미혼이지만 정식 혼인한 부부와 차별 없는 각종 혜택을 받게 된다. 

이제 우리도 ‘한국형 PACS’ 제도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중앙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74%가 프랑스식 PACS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비혼 및 만혼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경제적 요인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미혼자의 86%가 ‘직장을 구하지 못하거나 안정된 직장을 갖기 어려워’에 동의했고, 미혼자의 83%가 ‘결혼 생활을 유지할 정도로 수입이 보장되지 않아서’에 동의했다. 따라서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갖게 해주는 것은 출산율 제고의 핵심 대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05년 이후 큰 규모의 예산을 저출산 대책에 투입하면서도 별 효과가 나지 않는 것은 문제의 핵심이 보육이나 육아휴직 등 복지정책보다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경제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는 정부보다는 민간기업이 선도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정책에 국정운영의 최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선진국 중 유일하게 고령화의 늪에 빠지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활기찬 경제상황을 유지하는 나라는 세계 최우수 대학과 열린 이민정책을 갖고 있는 미국이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때문에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미국으로 모이고, 이들 중 상당수가 학업 후 미국에 머물기 때문에 인구의 평균연령은 선진국 중에서 가장 낮다. 

이러한 미국의 경험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양한 정책으로 출산율을 높이는 대책을 추진하면서, 이민정책을 현재의 소극적 자세에서 보다 적극적인 방향으로 전환한다면 단기적으로는 부족한 산업인력의 충분한 공급을 통해 경제활력을 도모함은 물론, 중장기적으로 인구 감소에 따른 정치사회적 혼란을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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