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왜 가난은 대물림 되나”
[백세시대 / 세상읽기] “왜 가난은 대물림 되나”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4.01.15 11:17
  • 호수 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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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주변에서 신세 한탄을 하는 이들을 본다. “왜 나는 평생 먹고사는 일에 쫓기며 살아야 하나”, “재벌가 자식들처럼 끼니 걱정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골라 하면서 행복과 쾌락을 누릴 수는 없는가”. 

대답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그런 꿈같은 삶은 허락되지 않는다”이다. 이유는 태어나는 순간 인생 성취의 8할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팔자타령도 아니고 운명론도 아니다. 경제학자가 오랜 기간 다양한 경제 수치를 통해 조사한 데이터로 확인된 것이다. 

김현철 홍콩과기대 교수는 의사 출신의 경제학 박사이다. 연세대 의대를 나와 의사 생활을 하던 중 ‘가난하고 소외된 이가 왜 더 많이 아프고 더 빨리 죽는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의사가운을 벗고 콜럼비아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졸업 후 코넬대학 정책학과 교수를 거쳐 지금은 홍콩과기대 교수로 있다. 

그는 “인생 성취의 80%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자기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태어나는 순간 결정 된다”고 말했다.

먼저 출생지가 어디냐에 따라 갈라진다. 북한이나 아프리카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면 미국, 영국, 독일 같은 선진국에서 태어난 것보다 50%를 깎아먹는다. 

두 번째는 부모로 인한 영향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두 가지 중요한 것을 준다. 하나는 DNA(유전)이고, 다른 하나는 어릴 적 환경이다. 세계은행에서 해외입양아와 생물학적 자녀들을 비교해 이 부분을 조사한 결과 부모가 준 유전이 임금의 30%를 추가적으로 설명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출생지(50%)와 부모의 유전(30%)이 인생 성취의 80%를 결정한다고 경제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따라서 나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상당히 제한적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조사가 있다. 

좋은 운을 겪은 사람과 나쁜 운을 겪은 사람들에게 결과는 공평하게 이루어지는가. 칠레에는 칠레대학과 칠레가톨릭대학이 유명하다. 그 나라의 주요 기업에 들어가는 이들 대부분이 두 대학의 상대나 법대 출신이다.

아슬아슬하게 대학에 붙은 이들과 아슬아슬하게 대학에 떨어진 이들을 대상으로 대학졸업 후 상위 0.1%의 부자가 될 확률을 추적했다. 결과는 대학에 합격한 남자가 떨어진 남자보다 부자가 될 확률이 2%에서 3%로 증가했다. 이는 남자에게만 국한된다. 

다시 대학에 합격한 남자를 일반고와 명문사립고 출신으로 비교했다. 결과는 명문사립고를 나온 이가 과실을 더 많이 따먹는다는 거였다. 물론 아슬아슬하게 붙은 이와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이 사이에 능력 차이는 거의 나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큰 회사에 들어가면 위에서 밀어주고 끌어주는 손이 존재해야 임원도 되고 부자가 된다. 명문사립고 출신은 이런 기회를 얻지만 일반고 출신은 그렇지 못하다.  

김 교수는 “이는 사회의 재분배 구조가 잘못된 것을 말한다”며 “칠레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로버트 프랭크 미국 코넬대 교수는 “능력주의의 가장 큰 부작용은 인생 성취를 많이 이룬 이들이 자기 힘으로 된 것인 양 믿는 것”이라며 “이들은 ‘왜 내 힘으로 번 돈을 국가가 빼앗느냐’며 세금 내는 것에 대해 적대적이고, ‘어려운 이들은 노력을 하지 않아 그런 것’(운이 나빠서인데)이라며 어려운 이를 돕는데도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인생 성취를 결정하는 운은 공정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불평등하게 흩뿌려져 있다. 더구나 있는 자가 과실을 더 누린다. 불운의 결과는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이 경험한다. 똑같이 불행을 겪었어도 부유한 집 자식은 그 불행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으나 없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똑같은 불행도 더 크게 겪는다.

김현철 교수는 “따라서 가난한 사람에게 불운을 극복하도록 힘과 배경을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김 교수의 경제학적 이론에 따르면 불운이 닥치는 건 운이 나빠서 그런 것이지 우리가 막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니란 얘기가 된다. 과연 이런 말이 운이 없는 이들에게 위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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