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산책] 슬픔의 자세
[디카시 산책] 슬픔의 자세
  •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 승인 2024.01.15 11:20
  • 호수 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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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자세 

이건 꿈인가요

 

무섭게 빛을 바래가는 속도 앞에서

어두운 한낮인 여기는

 

깨지 않는 꿈속인가요


동유럽 여행 중 체코 프라하에 도착해 작은 광장을 지나갈 때 구걸하고 있는 한 분이 눈에 밟혔다. 기우뚱 한 쪽으로 기우는 몸을 겨우 붙들고 오래 서 있었으나 관광객이 대부분인 사람들은 노인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제각각 자신의 갈 길을 갔고 볼일을 봤다.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차마 슬픔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삶의 무게가 얼마나 되어야 저런 표정을 갖는단 말인가.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고 말하는 저 몸의 기울기를 무엇으로 바로 세운단 말인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서 있는 노인 옆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비눗방울 쇼가 열리고 길거리 악사들은 신나는 연주를 하고 있었다. 노인은 없는 존재처럼, 그림자처럼 그 자리에 못 박혀 있을 뿐이었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니야’라는 말만 되풀이되고 있는 꿈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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