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환경을 원망하지 말자 / 오경아
[백세시대 금요칼럼] 환경을 원망하지 말자 / 오경아
  • 관리자
  • 승인 2024.01.22 10:47
  • 호수 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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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가든디자이너
오경아 가든디자이너

푸른빛 감도는 호주 블루마운틴

4년 전 산불로 37%가 불탔지만 

폐허에 신비로운 꽃이 피어나고

유칼립투스 숲도 다시 살아나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 보여줘

나는 지난 2019년 호주 시드니 블루마운틴을 방문했다. 호주의 그랜드캐년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인근 도시 카툼바의 고도를 기준으로 보면 무려 400미터 아래로 그 광경이 펼쳐진다. 마치 스노쿨링을 하면서 수 백미터 바다 밑을 보는 느낌이다. 

이 블루마운틴엔 수백만 그루의 유칼립투스가 자라고 있는데, 그 잎의 푸른 빛과 나무가 뿜어내는 산소로 인해 대기가 푸르게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이곳에서의 엄청난 산불 소식을 들었다.  

12월부터 시작된 산불은 1월이 되어도 꺼지지 않았다. 불기둥이 70미터까지 올라갔고,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 이때 분출된 이산화탄소의 양이 8억3000만톤이어서 세계 기후가 이를 계기로 상당한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결국 이 산불이 멈춘 건 라니냐 현상이 찾아와 차가운 비가 내린 덕분이었다. 지친 소방관들이 무릎을 꿇고 비를 맞는 사진은 전 세계를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 산불로 인해 사람의 목숨도 안타깝게 희생이 됐지만, 야생의 동·식물에겐 자료를 산출할 수도 없을 만큼의 재앙이었다. 전체 블루마운틴의 37%가 불탔으며 2만6000종의 식물이 생명을 잃었고 그중에는 멸종 위기의 식물 500종도 포함됐다. 산불의 원인은 번개였다. 12월 호주는 50도 가까이 뜨겁게 온도가 올라갔고, 이때 내려친 번개가 불을 일으킨 것이다.

이후 2023년 11월 나는 다시 블루마운틴을 찾았다. 4년 만에 찾아간 그곳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전히 푸른 유칼립투스의 숲이 짱짱했다. 하지만 숲길을 내려가는 동안, 시커멓게 그을린 나무와 흙의 상처가 여실히 보였다. 하지만 분명 4년 전 만큼이나 풍성한 숲의 모습에 놀랍기만 했다.

사실, 산불이 난 후 새롭게 맞은 여름인 2020년 크리스마스 즈음, 호주 사람들의 소셜 미디어에는 블루마운틴의 사랑스러운 사진이 돌기 시작했다. 트래킹을 하던 사람들이 찍은 것은 검은 흙 속에서 아이들 손안에 쏙 들어갈 정도의 작은 흰색과 분홍이 섞인 꽃 사진들이었다. 

특히 분홍 꽃이 집단적으로 피어났는데 산불로 폐허가 된 지역에 집중돼 있어 사람들은 상처난 대지를 위로하는 신의 선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신비로운 식물의 공식 이름은 ‘Actinotus forsyhii’. 실제로 이 꽃이 피어난 건 무려 64년 만의 일이었다. 한 신문은 지역 주민들 인터뷰를 통해 지난 1957년 이 꽃을 보고, 지금에서야 다시 보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태 과학자들은 이미 꽃의 개화를 점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식물은 산불이 나고 나서야 재가 된 땅에서만 피어나는 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식물은 왜 이런 이상한 방식의 생존방식을 택했을까? 

블루마운틴의 식물들은 수억 년 동안 반복되는 산불을 극복하기 위해 끝없는 진화를 거듭해왔다. 산불은 우거진 숲을 없애는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덩치가 작아 빛조차 볼 수 없는 작은 식물의 씨앗은 큰나무가 제거되어 빛을 볼 수 있는 상태까지를 수년, 수십 년을 기다린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당당히 꽃을 피운다. 아름드리 유칼립투스의 생존 진화도 마찬가지다. 이 나무는 기름을 머금고 있어서 그야말로 불쏘시개 역할을 할 정도다. 그래서 유칼립투스는 지상의 가지는 금방 타버려도 뿌리가 살아남을 수 있게, 뿌리 쪽에 강한 내염(耐炎) 성분을 지니고 있다. 

4년 만에 블루마운틴이 거의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밑둥이 살아남은 유칼립투스가 빠르게 다시 회복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지구에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생명체 멸종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 멸종의 원인은 지구 기후의 변화였다. 이 다섯 번의 멸종으로 지구에 살았던 90% 이상의 생명체가 이 지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살아남은 10%에서 출발해 다시 더 풍성한 종의 다양성을 만들어냈다. 

지금의 우리는 모두 그 10%의 생존자가 만들어낸 생명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과학자들은 이미 이 지구가 여섯 번째 멸종 단계로 들어선 게 아닌가, 우리의 미래를 걱정한다. 그러나 걱정 속에서도 이런 희망을 이야기는 사람도 많다. 이 지구의 일을 예측하고 있는 유일한 생명체인 우리다. 그렇다면 그 어떤 생존의 길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속초, 나의 정원엔 비록 내가 심었지만 수 많은 식물들이 제각각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속초 추위가 만만치 않을 상황 속에서도 5년 전 심은 꼬챙이 같았던 동백나무는 키는 작아도 굵기를 키우며 이젠 꽃도 피운다. 

늘 진딧물에 몸살을 앓는 모과나무도 매년 죽을힘을 다해 벌레와 전쟁을 치르며 그래도 살아간다. 수십 그루를 심은 자작나무들 중에는 여름 무더위를 못 견디고 반 이상이 죽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작나무는 눈부시게 하얀 껍질을 유지하며 햇살에 반짝인다. 

성공한 이들의 신화는 늘 우리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는 듯하다. 내가 처한 환경을 원망하지 말라. 그 환경을 잘 이겨내는 노력이 우리의 운명을 바꾼다. 나도, 우리도, 이 지구도 그러할 수 있기를 2024년 새해에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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