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특별기고] 지팡이는 ‘효자발’이다 / 이한영
[백세시대 특별기고] 지팡이는 ‘효자발’이다 / 이한영
  • 이한영 ㈜숨비 회장
  • 승인 2024.01.22 10:51
  • 호수 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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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 ㈜숨비 회장
이한영 ㈜숨비 회장

스핑크스는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몸을 가진 괴물이다. 생긴 것처럼 성격도 포악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내, 답을 맞추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잡아먹어 버렸다. 때마침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와 맞닥뜨리게 됐고 스핑크스는 그에게 ‘아침에는 발이 네 개였다가, 낮에는 발이 두 개였다가, 밤에는 발이 세 개인 것이 무엇인가?’ 물었다.

재치 있는 오이디푸스는 망설임 없이 ‘어릴 때는 두 팔과 두 다리로 기어 다니고, 성장하면 두 다리로 걸어 다니며, 늙으면 지팡이를 짚어 세 다리로 걷기 때문에 답은 사람’이라고 정답을 말해 스핑크스를 물리쳤다고 한다.

위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처럼 인간은 모든 만물이 그러하듯이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 특히 걷는 모습이 확연히 달라진다.

걷기 즉, 보행은 하지를 반복적으로 번갈아 이용하여 우리 몸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과정은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복잡해서 하지의 관절과 근의 연속 운동에 의해 몸 중심의 전방 이동을 도모한다. 다수의 근육과 관절 그리고 골반에서 동시에 협조하며 제어된 과정에서 일어나는 운동이므로 이들 기관이나 조직, 또는 그들을 지배하는 신경에 장애가 일어나면 보행장애를 초래하게 된다.

이족보행에 필요한 도구

또한 정상적인 보행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균형 감각인데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각, 청각, 고유수용성감각 그리고 하지 근력 등을 필요로 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러한 균형능력과 근력이 감소하게 되면, 신경학적인 문제가 없고 동반된 질환이 없다고 하더라도 보행 능력의 변화가 오게 마련이다.

노화가 진행되면 보행의 폭은 줄어들고 양발의 간격은 넓어지게 된다. 또한 팔다리를 활기차게 움직이지 않으며 허리 고관절과 무릎 등을 구부정한 상태로 조심스럽게 걷게 되어 보행속도가 느려진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이족보행 즉, 직립보행을 함으로써 많은 혜택을 받았다. 먼저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손으로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뇌가 진화되어 오늘날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 반면 이족보행은 사족보행보다 더 많은 균형 감각이 필요했고 그래서 이 불완전함을 지팡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해결했다.

그러므로 만유의 영장인 인간이 도구인 지팡이를 쓰는 것은 조금도 부끄럽거나 겸연쩍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종종 어르신들께 안전한 보행을 위해 지팡이 사용을 권유해 드리면 “내가 노인이냐”며 역정을 내시곤 한다.

부끄러움이 아니라 리더십 상징

사실 역사책이나 성경을 살펴보면 황제나 교황은 언제나 화려한 지팡이를 사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지팡이가 권위와 지도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현대 클래식 음악에서 지휘자가 사용하는 지휘봉은 한손으로 들 수 있는 가볍고 날렵한 모양이지만 바로크 시대까지만 해도 사람보다 더 큰 지팡이로 바닥을 쿵쿵거리며 지휘했다.

이제는 노인들의 늙음이 주는 가치를 세월의 경험과 연륜 그리고 그것들에서 비롯된 지혜로 재발견해야 할 때이다. 그들의 지팡이가 이 시대에 어른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이 사회와 가정의 지휘자로서 갈등을 중재하고 화합하게 하는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어린이가 이 나라의 새싹이듯 노인들이 이 나라의 뿌리이며, 어린이가 이 나라의 미래이듯 노인들은 우리들의 미래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끄러짐 등 낙상의 위험이 큰 이번 겨울, 부모님께 효자보다 더 든든한 지팡이 하나 마련해 드리면 어떨까? 효자손이 아니라 효자발이 되어드리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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