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치매센터 치매극복 희망수기 3] 아버지 의자
[중앙치매센터 치매극복 희망수기 3] 아버지 의자
  • 관리자
  • 승인 2024.02.02 11:17
  • 호수 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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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장은겸] 오늘따라 대문 앞에 놓여 있는 빈 의자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전용물이었던 의자다. 치매를 앓으셨던 아버지는 살아생전 날이 새기만 하면 어김없이 나지막한 담장 앞에 있는 낡은 의자에 앉아 세상 구경을 하셨다. 

지나가는 동네 분들과 눈인사도 하고 대추나무 밑에 매어 놓은 멍멍이랑 장난을 치시기도 하고. 무더위에도 땡볕에 앉아 계시는 바람에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리고 땀범벅이 돼도 방으로 들어오시지 않아서 아들이 큰 우산을 걸어 그늘막을 만들어드리기도 했다.

아버지는 군대에서 총상을 입어 머리 수술을 수차례 받으셔서 왼편 마비가 되어 걷는 것도 절룩거리고 왼쪽 팔을 사용하지 못하셨다. 평생 투병 생활을 해오던 중 치매 판정을 받으셨고 치매 증상이 조금씩 심해지기 시작했다. 

방금 식사를 하시고도 먹을 걸 달라고 자주 고함을 치시는가 하면, 엉뚱하게 의심하고 폭언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사라지셨다. 경찰에 신고하고 우리 가족은 평소 어머니랑 다니던 산책로며 뒷산 여기저기를 밤늦도록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그렇게 가족들 속을 끓일 때, 밤 열 시쯤 장호원 고모님 댁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장호원 경찰의 도움으로 지금 집에 들어오셨다는 것이었다. 고모 댁에서 며칠 계시게 한 뒤 보낼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전화였다. 

버스로 두 시간이면 갈 거리인데 아침에 나가신 분이 밤 열 시까지 길을 못 찾았으니 얼마나 몸이 달았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실종 아버지, 알고 보니 고모 댁에

그때가 복숭아가 한창 맛나던 때였다. 해마다 이맘때면 과즙이 풍부한 백도를 택배로 보내주시던 누님이 보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에도 당신 살아생전 혈육인 누님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얼마나 가엽고 눈물이 나던지. 

놀란 어머니를 달래드리고 사흘 후에 아버지를 모셔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백숙을 먹으러 갔는데 어머니에게 미안하셨던지 뱃살을 빼야 한다며 죽만 조금 드시는 걸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파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 후 5개월여를 자식들 얼굴도 이름도 잊어버리고 어린아이처럼 지내시다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치매를 앓으시기 전까지는 치매가 어떤 것인지 피상적으로 생각했을 뿐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았었다. 

치매 환자를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환자 또한 한 인간의 삶의 궤적이 모두 사라지고 평생을 보듬었던 가족들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 아버지를 보면서 알 수 있었다. 

기억을 잃어가면서 겪어야 하는 환자의 고통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고 가족들 또한 삶의 바탕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이 모든 일은 한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넓은 범위에서 보면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국가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보낼 수밖에 없는 날들을 보내는 동안 어머니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늘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시리다.

옆집에 사시는 할머니가 집안에서 화장실을 가끔 못 찾는다며 할아버지께서 한걱정하셨다. 점잖으신 분이 말이 많아지고 이유 없이 흥분하는 걸 보면서 청원 보건소 치매안심센터에 방문하여 치매 선별검사를 했는데 인지 저하라고 했다. 

노부부만 사시고 자녀들은 멀리 있어 부득이하게 일일 보호자를 자청해 어르신과 동행하게 됐다. 치매안심센터에서 연계해준 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고 치매 치료 약 처방을 받았다. 검사비랑 치료관리비까지 지원을 해주셔서 참 다행이었다.

두 차례나 장날 버스 타는 곳을 잃어버려 한참 만에 정신이 돌아와서 버스를 타고 온 일이 있다 하셔서 배회 가능 어르신 인식표도 신청해드렸다. 사진이 필요하다 해서 최근 사진 한 장 부탁드렸더니 30년도 더 된 빛바랜 사진을 가져다주라고 하셨다. 그때가 제일 예쁘셨던 걸까? 휴대전화로 주름진 얼굴이지만 웃는 모습을 담았다. 밝게 웃으시니 예쁘다. 

인식표가 나오던 날, 치매안심센터 선생님께서 집으로 방문해주셨고 직접 다림질해서 옷에 붙여주며 시범을 보여주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감사했다. 또 돌봄 서비스와 센터에서 진행하는 숲 치료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주셨다. 

빈 의자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 의자

멀리 사는 자식보다도 더 천천히 설명해주시고 걱정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주시는 모습이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요즘 경로당에 가셔서 이웃들과 이야기도 하시고 많이 웃는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빈 의자는 아직도 우리를 반긴다. 누구 하나 치우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 의자에 앉아 세상을 본다. 저마다 아버지의 추억을 꺼내보는 추억의 의자이다. 아버지는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응원해주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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