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뉴스브리핑] 빚 돌려막기로 한계 상황에 처한 ‘다중채무자’ 최다 … ‘연착륙’ 대책 세워야
[백세시대 / 뉴스브리핑] 빚 돌려막기로 한계 상황에 처한 ‘다중채무자’ 최다 … ‘연착륙’ 대책 세워야
  • 배지영 기자
  • 승인 2024.02.19 09:02
  • 호수 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세시대=배지영 기자] 빚으로 빚을 돌려막으며 금융 취약계층으로 전락한 ‘다중채무자’ 수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고금리 장기화가 쉽게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이라 이들의 대출 상환 부담은 계속 커질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다중채무자 가계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국내 가계대출 다중채무자는 약 450만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국은행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2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전체 가계대출자(1983만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2.7%로 사상 최대다. 다중채무자는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사람을 가리킨다. 가계대출자 4명 중 1명이 다중채무자라는 것은 빚 돌려막기에 여념이 없는 서민 가계가 많다는 뜻이다. 고금리 국면에서 그 수가 불어나고 비중도 커지는 것은 분명한 위험 신호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상환 능력이 취약한 점도 걱정이다. 다중채무자의 평균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5%로 추산됐다. 이는 2019년 3분기(1.5%)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58.4%로, 소득의 약 60%를 원리금 상환에 쓰는 모습이다. 다중채무자의 26.2%(118만명)는 DSR이 70%를 넘었고, 14.2%(64만명)는 100%를 웃돌았다. DSR은 대출자가 한해 갚아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차주의 상환 부담을 한눈에 보여준다. 

금융당국은 통상 DSR 70% 안팎이면 최소 생계비를 제외한 소득 대부분을 원리금 갚는 데 쓰는 것으로 간주한다. 한계 상황으로 본다는 뜻이다. DSR 70% 이상이 118만명이란 숫자는 실로 암울한 통계자료일 수밖에 없다. 

다중채무자 가운데 저소득(소득 하위 30%) 또는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 상태인 ‘취약 차주’는 전체 가계대출자 가운데 6.5%에 이른다. 신용도가 낮은 이들은 이자가 높은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로 몰려가는 풍선 효과까지 일어나고 있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위험 수위를 넘은 지 오래다. 국제금융협회(IIF) 최신 보고서에서 조사 대상 34개국 중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지난해 3분기)이 100%를 넘는 곳은 한국이 유일했다.

여러 곳에서 빚 독촉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연이자가 수백에서 수천%에 이르는 불법 사금융의 함정에 빠져들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미 다중채무자면서 소득이 하위 30%에 속하고, 신용점수까지 낮은 취약차주의 비중이 3년 만에 최고로 높아진 상태다. 

금융당국은 선제적인 다중채무 위험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선심성 정책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조속한 대책이 없다면 이들이 찾아갈 곳은 사채시장뿐이다. 

고금리 장기화로 당분간 가계부채와 연체율은 상승세를 이어 갈 게 뻔하다. 가계대출 ‘뇌관’이 금융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선제 대응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옥석 가리기와 더불어 채무조정 프로그램 정비 등 금융 취약계층의 상환 부담을 줄이는 특단책을 서둘러야 한다.

우선 기존 대출을 저리의 장기대출로 전환할 수 있도록 대규모 대환대출 프로그램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도덕적 해이와 다른 대출자와의 형평성 훼손을 유발하지 않는 선에서 이자 감면도 고려해야 한다. 막연한 퍼주기가 아닌 보다 정교한 핀셋 대책을 통해 이들의 연착륙을 도와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