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2024년에도 여전한 영어 남발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2024년에도 여전한 영어 남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4.02.26 10:40
  • 호수 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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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지난 1996년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주연을 맡은 영화 ‘솔드 아웃’이 개봉됐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해 개봉한 이 작품은 직장일로 가정을 소홀히 하던 한 아버지가 아들과 약속한 크리스마스 인형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터미네이터’, ‘트루 라이즈’ 등 흥행 성공으로 명실공히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액션스타로 자리잡은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연기 변신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지금과 달리 1990년대에는 중학교에 입학해서야 ‘ABC’를 배웠다. 이 영화가 개봉하던 당시 갓 교복을 입게 된 필자는 낯선 영어 단어의 뜻도 모른 채 영화를 봤다. 제목을 모른다고 해서 영화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은 건 아니었기에 뜻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솔드 아웃’(Sold Out)이 ‘품절’이란 뜻이란 것도 고등학생이 돼서야 알았다.

최근 한 SNS에 한 이용자가 ‘Sold Out’의 뜻을 몰라 한참이나 키오스크 버튼을 누르던 고령자의 사연을 올려 주목받았다. 해당 이용자는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앞에 사람이 같은 버튼을 계속 누르며 난감해하는 걸 확인한다. 도움을 주고자 키오스크 화면을 보니 ‘솔드 아웃’이라고 영어로 적혀 있었고 고령자에게 ‘품절’이라고 알려줬다며 씁쓸해 했다.

최근 필자가 방문한 한 일식집은 인테리어부터 일본풍으로 꾸며져 있었다. 메뉴판이 일본어로 도배돼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실제 메뉴판은 한글과 일본어가 함께 표기한 데다가 한글을 더 크게 썼다. 같은 날 식사 후 방문한 카페는 누가 봐도 한국적인 분위기였지만 메뉴판은 죄다 영어였다. ‘아메리카노’를 ‘곱게 간 원두에 고온 고압으로 소량의 물을 투과시켜 추출한 고농축 커피에 물을 탄 미국식 음료’라고 쓰지 않아도 ‘Caffé Americano’로 적을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작고 얇은 직사각형의 종이 또는 플라스틱’ 보다 ‘카드’라 부르는 것이 오히려 더 직관적이다. 한글보다 전달력이 높다면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낫다. 필자 또한 기사 작성 과정에서 쓸데없이 영어를 쓰는 실수를 종종 한다. 또 끝내 대체할 만한 단어를 찾지 못해 부연 설명을 넣기도 한다. 

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무조건 전달력이 높은 한글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외국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하지만 80대 전후 어르신들은 가난과 남아선호사상 탓에 학교 문턱을 밟지 못해 한글조차 버거워하는 분들이 많다. 영어를 쓰는 것은 매력일 수 있지만, 영어만 사용하는 것은 꼴사나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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