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96세에 매일 출근하는 전직 장관”
[백세시대 / 세상읽기] “96세에 매일 출근하는 전직 장관”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4.03.18 11:06
  • 호수 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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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대한노인회 지회장 가운데 최고 연장자는 홍성희 서울 양천구지회장이다. 1929년 생으로 올해 95세이다. 목동 트라팰리스아파트에 거주하는 홍 지회장은 건강 비결을 묻자 “50층 아파트의 21층이 우리 집인데 가끔 건강을 생각해 걸어 올라갈 때가 있다”고 대답했다. 

76세까지 기업의 고문·대표를 역임한 홍 지회장은 경로당을 설립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아파트는 경로당 설치 의무 조항이 없는 주상복합건물인데다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중 하나여서 굳이 경로당 설립을 원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 지회장은 해외에 나가 있는 주민의 동의까지 받아내는 등 힘들고 번거로운 과정을 통해 경로당을 설립했던 것이다.

96세에 매일 출근하는 전직 장관도 있다. 1928년 황해도 재령 출신의 생물학 박사로, 교육부 장관, 서울대 총장을 지낸 조완규 서울대 명예교수이다. 1990년대 국제백신연구소 유치위원장을 맡아 활동한 인연으로 요즘도 국제백신연구소에 나가고 있는 것이다. 국제백신연구소는 개발도상국 어린이의 전염병 예방을 위한 저렴한 백신을 개발하는 국제기구이다. 

조 교수는 최근 ‘한강포럼’의 강연자로 나서 “지금도 서울대학교 후문 쪽에 있는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상임고문실로 출근해 여러 단체 모임에 참석하는 등 젊은이처럼 활기찬 생활로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조 교수의 건강비결은 소식과 적당한 운동, 마음을 비운 생활이다. 소식을 하게 된 건 위병 때문이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무급조교로 연구실에서 침식생활을 하며 교수 연구를 돕던 시절, 스트레스가 심해 위궤양을 앓고 나서부터 음식을 많이 먹지 못했다. 지금까지 아침은 빵 한 조각, 우유 한 컵, 주스 한 잔이다. 사무실에 나가서는 오찬 약속이 있는 한 우유 한 컵으로 때운다. 저녁식사도 일반 사람의 3분의 1정도다. “소식이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고 한다.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따로 있다. 연구실에만 박혀 있던 1975년 여름, 아침 일찍 교수들 민방위훈련에 동원됐다. 온종일 연구소에 앉아있어 뛰어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10m도 못 가서 주저앉아 버렸다. 그때 자신의 체력에 충격을 받고 조깅을 시작했다. 아침 5시 성북동 집에서 삼청터널까지 왕복하면서 10km를 달렸다. 해외출장이나 외국여행을 가서도 빠지지 않고 했다. 

조 교수는 “1988년 총장 시절에는 매일 아침 관악산 중턱까지 오갔다. 2003년 내방역 서리풀공원 근처 아파트로 이사한 후에는 아침 일찍 공원으로 나가 각종 운동기구로 10여분 몸을 푼 후 공원 내를 7000~8000보 걷는다. 아직은 허리가 괜찮아 계속 걸을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마음 비우기’는 쉽지 않았지만 청정한 마음으로 잘 극복했다. “마음 비운 삶은 곧 욕심을 버리고 산다는 뜻으로 욕심이 없으니 스트레스가 생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는 대학에서 학과장, 부총장, 총장으로 거론될 때마다 가르치는 일에 충실하겠다는 이유를 대고 거절했다. 심지어 장관 임명 소식을 받았을 때도 청와대와 실랑이를 벌일 정도였다. 

1991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교육부장관 추천 통보를 받았다. 노태우 정부 13개월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장관을 맡을 생각이 없었던 지라 정 실장과 30여분 간 “맡으라”, “싫다”하며 실랑이를 했다. 끝내 화가 난 정 실장이 “오후 4시에 보도가 나가니 그리 알라”며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청와대로 들어가자 노태우 대통령이 “장관직을 하기 싫다고 하셨다면서요. 같이 고생 좀 합시다”라며 사의를 받아주지 않았다. 

조 교수는 당시 일과 관련, “안하겠다는 사람을 끝내 장관으로 임명한 노 대통령의 무덤덤함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백세를 눈앞에 둔 지금도 봉사하는 단체가 여럿 된다. 나이는 들었지만 마음은 아직 젊다는 의미로 ‘노심 청심’(老心 靑心)이라는 단어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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