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바자렐리:반응하는 눈’ 전, ‘의사’ 포기하고 화가의 길 선택한 ‘옵아트’의 거장
‘빅토르 바자렐리:반응하는 눈’ 전, ‘의사’ 포기하고 화가의 길 선택한 ‘옵아트’의 거장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4.03.25 13:23
  • 호수 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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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태생 프랑스 작가… 초기작부터 주요 대표작까지 200여점 선봬

선으로 표현한 ‘탄생’ 시리즈, 서울올림픽 엠블럼으로 제안 ‘Hexa5’ 등

이번 전시에서는 옵아트의 선구자라 불리는 빅트로 바자렐리의 초기작과 대표작 등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사진은 그의 대표작 ‘마르상-2.
이번 전시에서는 옵아트의 선구자라 불리는 빅트로 바자렐리의 초기작과 대표작 등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사진은 그의 대표작 ‘마르상-2.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199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는 ‘매직아이’(오토스테레오그램)가 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착시 현상을 이용해 겹겹이 쌓여 있는 그림 속에 숨겨진 또 다른 그림을 찾는 것으로 한 번쯤 안 해 본 학생이 없을 정도였다. 지난 3월 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매직아이’를 연상케 하는 작품들이 대거 걸려 있었다. 20세기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옵아트’의 선구자 빅토르 바자렐리 작품들은 관람객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헝가리 태생의 세계적인 프랑스 작가 빅토르 바자렐리(1908~1997)의 작품들이 33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오는 4월 21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되는 ‘빅토르 바자렐리 : 반응하는 눈’ 전에서 그의 초기작부터 대표작까지 200여점의 작품을 통해 예술 세계 전반을 조명한다.

바자렐리는 부다페스트대학 의학부의 입학 자격을 얻었으나 이를 포기하고 디자인 학교에 진학했다. 1930년 파리로 이주하면서 그래픽 디자이너와 상업 광고 디자이너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실험 끝에 ‘옵아트’(Op Art)의 길을 개척했다. ‘옵아트’는 광학적 예술 또는 시각적 예술이라는 뜻을 지닌 ‘옵티컬 아트’(Optical Art)의 줄임말로 기하학적 형태와 색채 등을 이용해 사람의 눈에 착시를 일으키는 예술의 한 장르다.

그는 도형과 색상으로 이뤄진 자신만의 조형적 언어를 창조했다. 특히 컴퓨터가 상용화되기 전에 수학적 계산과 광학 이론을 토대로 컴퓨터로 코드를 짜듯 색상과 형태를 정교하게 그려넣어 미묘한 변화와 착시를 일으키는 화면을 만들었다

시작은 1965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전시회 ‘반응하는 눈’(Responsive Eyes)이었다. 큐레이터 윌리엄 세이츠(William Seitz)가 기획한 이 전시에 바자렐리도 초청돼 참여했다. 두 달간 관람객이 18만명이 몰리면서 전시는 대성공을 거뒀고 바자렐리는 역시 세계적 작가로 도약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초기작품’부터 ‘세리그래피 실크스크린’까지 13개에 달하는 섹션을 통해서 각 시대별로 작가가 몰두한 작품의 경향과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중 바자렐리가 헝가리의 바우하우스로 불린 뮤힐리 아카데미를 다니며 그린 그림들과 파리로 이주해 그린 광고 디자인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초기작에서부터 기하학적 패턴으로 화면에 입체감을 만들어낸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스위스 제약회사 가이기에서 출시한 나방퇴치체 ‘미틴’의 광고 디자인이 대표적인데, 작가로 본격적으로 데뷔하기 전부터 옵아트의 세계를 구축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자렐리는 유행에 휩쓸리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당시 프랑스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엥포르멜(비정형이란 의미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현대 추상회화의 한 경향) 화풍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시기 그린 그림들은 물감을 거칠고 두껍게 칠하거나 회화적 느낌이 강해 전혀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바자렐리는 스스로 이 시기를 ‘잘못된 길’이라고 불렀다.

이 시기를 지나 40대에 접어든 그는 다시 자신의 작품세계를 가다듬고 ‘옵아트’ 하면 떠오르는 기하학적인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시작은 선이었다. 가느다란 선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선이 수없이 반복되며 조금씩 변주될 때, 거기에 리듬감과 움직임이 생긴다. 바자렐리는 이 작품들을 ‘탄생’ 시리즈라 명명했다. 

무엇보다 바자렐리는 시대를 앞서 나갔다. 과학과 기술 발전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바자렐리는 과학 지식을 응용해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또한 철저히 수학적 계산에 기반해 작품을 만들었는데 대표적으로 알고리즘과 순열을 이용하기도 했다. 색상과 모양에 일정한 코드를 부여해 작품을 제작하고, 흑과 백을 대조하거나 몇 개를 골라 순서를 고려해 나열하는 순열을 이용했다. 혼합하지 않은 순수한 색만 사용해 복잡하고 정교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노력이 있었다. 전시에서는 ‘티바를 위한 구성 프로그램’(1979) 등을 통해 그가 만든 복잡한 ‘알고리즘’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전시에서는 바자렐리가 자신의 작품을 실크스크린 판화, 조각, 태피스트리 등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한 작품들도 볼 수 있는데, 이는 바자렐리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이와 함께 바자렐리가 1988년 서울올림픽 엠블럼으로 제안한 벌집 모양의 육각형 ‘Hexa5’, 1989년 남긴 육각형 형태의 조각 ‘시작’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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