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터전 바꾸니 悠悠自適(유유자적) 노년생활
생활터전 바꾸니 悠悠自適(유유자적) 노년생활
  • 관리자
  • 승인 2006.09.0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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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땅에서 흙과 함께 살어리랏다

예전부터 은퇴하면 시골에 내려가 농사지으며 편안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은퇴를 했는데도 시골로 내려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살이가 근 50여년이 되다보니 과연 잘 적응하고 살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던 거지요.”


“실은 남편보다 제가 더 망설였어요. 남편은 시골생활을 원하지만 시골생활은 여자에게 불편하게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아파트 생활에 젖어 살다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살 수 있을까 스스로도 미심쩍었어요.”


올 봄 경기도 여주로 이사를 한 고모(67) 할아버지와 정모(63) 할머니 부부. 벼르고 벼르다가 탈 서울행을 결심했는데 정말 잘 내려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환한 웃음을 짓는다.


강남의 아파트를 팔아 여주에 텃밭이 딸린 작은 집을 사고 나머지는 상호저축은행의 고수익형 통장에 분산해서 돈을 넣었다.

 

고 할아버지는 10대 때 시골에서 부친을 따라 농사일을 돕던 경험을 떠올리며 밭에 이랑을 파고 고추씨, 상추씨, 오이씨, 가지씨를 심고 대파, 부추, 감자도 심었다.

 

전원생활을 먼저 시작한 이웃주민들이 와서 노하우를 전해주기도 했다. 아침에 눈 떠 일어나면 아내와 함께 밭에 나가 풀 뽑아주고, 물이 부족하지 않게 돌봐주자 채소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정 할머니는 정성으로 돌본 채소들을 따서 바구니 가득 들고 들어오는 아침이 그렇게 행복할지 몰랐다고 한다. 호박잎과 양배추 잎을 찌고 상추, 깻잎, 고추를 채반에 돌려 담고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김치와 함께 밥상을 차린다.

 

흙의 정기를 밟고 와서 인지 밥맛이 꿀맛이라는 노부부. 단백질과 칼슘 섭취를 위해 멸치볶음이나 생선 구이, 김이나 다시마를 함께 먹고 주말에 서울서 아들, 딸이 내려오면 그때 고기 파티를 벌여 단백질 보충한다고 한다.

 

소찬이지만, 소식이야 말로 노년기의 장수를 이끄는 식사라는 것을 알기에 아주 만족스럽다는 것.


“햇볕 뜨거운 한 낮엔 잠깐 한숨 눈을 붙이고 다시 밭에 나가 흙을 밟으며 생활 합니다. 유산소 운동하러 헬스클럽에 따로 갈 필요 없고 밤에는 잠도 아주 잘 잡니다.”


“서울에서 살 때는 남편이 집안일을 하나도 안 했는데, 여기 오니까 방도 쓸고 걸레질도 하고 필요하면 빨래도 합니다. 여자 할 일, 남자 할 일 가르지 않고 하니까 서로 싸울 일도 없어졌어요.”


다시 신혼기로 돌아간 것 같다는 노부부는 시골생활을 하니 큰 돈 들것도 없어 하루하루가 편안하다고 입을 모은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 남매가 다시 모여 정 나누며 살아


지모(69) 할아버지는 올 여름 서울 생활을 접고 충남 아산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누님 집 옆으로 이사를 갔다.


아들, 딸 남매를 출가시키고 노부부만 단촐하게 살아, 남는 시간이 많았던 지 할아버지는 아침 식사를 마치면 딱히 할 일도 없고 집에서 우두커니 지내자니 무료해서 아내와 함께 배낭 하나 둘러메고 근교의 산을 찾거나, 무료 지하철 티켓을 들고 동에서 서로, 북에서 남으로 지하철 노선 일주를 하다 오는 게 일이었다.

 

낮에는 발길이 닿는 분식집에서 김밥이나 우동으로 요기를 하고 저녁에 집에 들어오며 장을 봐서 식사를 지어 먹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TV를 보다가 잠을 잤다.


“특별히 바쁜 것도 없고 맨 날 그날이 그날이잖아요. 늙어서 잔병치레 안 하고 몸 잘 움직이며 사는 것도 복이지만, 어떤 때는 피붙이가 그리울 때가 많았어요. 자식들은 직장 때문에 포항과 대전에 떨어져 살아서 보고 싶을 때 얼른 가기가 힘들고.”


걸어가면 닿는 거리에 피붙이가 살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어 오다가 아산에서 농사를 짓는 세 살 위의 누나가 마침 옆에 집이 하나 났는데 내려와 사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누나의 제안을 받고 “왜 진작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했다는 지 할아버지. 아내도 찬성이었다. 다 늙어서 시누이 시집살이가 있을 리 없었다.

 

농사를 지을 줄 몰라도 누나와 매형이 있으니 거들어 줄 수가 있었다. 밥도 함께 지어 나눠 먹었다. 둘이서만 먹을 때보다 넷이 먹으니 밥맛이 더욱 났다.

 

저녁이면 두 쌍의 노부부가 구순하게 자랄 때 얘기, 젊었을 때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니 정신적으로도 한층 충족감이 든다고 한다.

도심 탈출, 전원생활 건강에도 좋아


농촌 인구가 해마다 줄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5 인구주택총조사’의 잠정집계에 따르면, 2005년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인구는 2000년보다 6.5%가 늘어난 2274만2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48.1%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농촌지역이 집중돼 있는 전남은 178만1000명으로 같은 기간 동안 17만 7000명(-8.9%)이 줄었다. 또 전북은 11만명(-5.8%), 경북은 9만5000명(-3.5%), 강원 2만6000명(-1.7%), 충북 8000명(0.5%) 등이 감소했다.

 

농촌마을이 많은 면지역의 인구는 477만명으로 5년 전에 비해 85만5000명(- 15.2%)이나 줄어든 반면 도시지역인 동지역의 인구는 이 기간 동안 174만2000명(4.7%)이나 늘었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농촌인구 감소는 국가적 과제이다. 정부는 농촌 살리기에 수 십 조원을 투자하고 있지만 도시와의 교육환경, 문화적 인프라 등 삶의 질 차이 때문에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나가고 있다.


빈 농촌에 고 할아버지 부부와 지 할아버지 부부들처럼 퇴직 후의 세대들이 여생을 보내는 방법이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농촌에서는 칠십이면 청년이다. 칠십이 가깝거나 넘은 노인이 이장 일을 보면서 동네의 궂은일을 도맡고 있는 것이 오늘의 농촌 모습. 퇴직 후의 60대 노인들이 이주를 한다 해도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셈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퇴직 후 고향인 농촌으로 귀향하는 사례가 많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많은 인구가 퇴직 후 귀향을 희망하고 있다.


일본의 비영리(NPO)법인인 ‘100만인 고향회귀 순환운동 추진 지원센터’가 지난해 1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도시인의 40%가 농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또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1949년 출생자들로 ‘단카이(團塊)세대’라 불리는 베이비붐 세대를 대상으로 일본의 경제주간지 「닛케이(日經)비즈니스」가 2002년 11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23%가 농·산촌으로 이주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인도의 「마누(MANU)」 법전은 인간의 생애를 학생기(學生期)·가주기(家住期)·임서기(林棲期)·유행기(遊行期)의 네 단계로 나눈다.

 

이 구분에 따르면 한창 활동하고 가정을 돌보는 월급쟁이 시절이 가주기이고, 정년퇴직 후 자연 속에서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며 지위·부·명예 등 세속적인 가치로부터 자신을 해방하는 시기가 임서기이다.


현의송 일본 히로시마수도대학 객원연구원은 “일반적인 도시인의 정년 후 생활을 우리 농사법에 대입한다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우선 일모작(一毛作)형 인생입니다. 종일 신문이나 TV를 보고 잠을 자면서 하는 일 없이 지내는 유형으로 노년을 비생산적으로 보내는 타입입니다.

 

다음은 이기작(二期作)형 인생인데, 새 직장을 구해 다시 정년퇴직 전과 비슷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농작물을 이기작으로 재배하면 연작 장해 등으로 좋지 않은 것처럼 인생도 같은 스트레스가 반복되므로 좋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보통 경제적인 이유로 이런 생활을 부러워합니다. 또 하나는 이모작(二毛作)형 인생입니다.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한 뒤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귀농해서 낙후된 농촌지역을 발전시키는 등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유형입니다.”


현의송 연구원은 도시 생활자가 정년퇴직 후 농촌이나 고향으로 돌아가면 할 일이 많다고 한다. 도시생활에서 얻고 쌓은 다양한 지식과 경험, 정보, 인적 네트워크 등은 농촌지역 활성화를 위해서 금광맥처럼 소중하게 활용될 수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우리보다 앞서 산업화를 이뤄냈던 일본 등의 예를 참고하며 우리도 퇴직 후 농촌으로 돌아가 노년을 보내는 방법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라고 전한다.


 장옥경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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