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늦은 시작은 없습니다
공부, 늦은 시작은 없습니다
  • 이미정 기자
  • 승인 2009.12.16 10:05
  • 호수 19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순덕(83) 양원초등학교 2학년 5반

 

백세시대 독자 여러분!

요즘 저는 세상에 태어나서 최고로 즐겁고 행복합니다.

자다가 한밤중에 잠이 깨서 눈을 떠 보면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한참동안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아침이면 책가방을 메고 어린아이처럼 학교에 공부하러 가는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물네 살에 혼자돼 어린 남매를 데리고 살아보려고 막노동부터 시작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세상 풍파를 겪으며 살았습니다. 이제 어느덧 83세가 되었습니다.

손자며느리에 증손자까지 본 노인이 되고 나니 무릎도 성치 않고 눈도 침침하고 귀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집안에 앉아서 천장만 바라보며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네 복지관에 다니면서 체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외손자의 소개로 양원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교장선생님께서 80세가 넘은 노인도 받아 주셔서 입학하고 보니 공부하는 재미가 복지관에서 노는 재미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학교에 와서 구구단도 배우고, 받아쓰기 시험도 보고, 학년말 시험에서 우수상도 받았습니다.

제가 학교에 다닌다니까 복지관 친구들은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 나이에 공부는 해서 뭣에 쓸 거냐며 비웃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학교가 더 좋으니 같이 가자고 계속 설득하고 있으니 머지 않아 친구들도 저를 따라 양원초등학교에 오리라 믿습니다. 

저희 반에서는 제가 나이가 가장 많다고 '왕언니'라고 부릅니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모두 왕언니 대접을 해 주는 것이 기분 좋지만 왕언니답게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도 무겁습니다.

왕언니가 공부를 못하면 체면이 서지 않을 것 같아서 받아쓰기 연습도 더 많이 하고 보충수업이나 토요특강도 빠지지 않고 참석합니다.

또 왕언니가 결석을 자주하면 학생들이 따라서 결석을 할까봐 입학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또 왕언니가 아프다고 하면 남도 기운이 빠지고 여기저기 더 아픈 곳이 생길까봐 아무리 아파도 학교에서는 아프다는 소리를 안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제가 아픈 곳이 한군데도 없는 줄 알고 있지만 저도 아픈 곳이 많습니다. 아픈 내색을 안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왕언니답게 행동하기 위해서, 첫째 열심히 공부하고, 둘째 결석을 하지 않고, 셋째 아프다는 소리 안하고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가끔씩 고령이라는 이유로 대접 받기를 바라는 사람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접은 집에 가서 집안 식구들에게 받고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 잘 따르는 아홉 살 어린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 나이가 너무 많아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다닐 수만 있으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도 가고 싶은데 우리 교장선생님께서 중학교에 받아주실지 걱정이 됩니다.

교장선생님, 저 여든 일곱 살이 돼도 중학교 받아주실 거죠?

※김순덕 어르신은, 성인대상 초등학력 인정 학교인 양원초등학교가 최근 실시한 ‘제4회 나의주장발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수상작을 본지에 보내왔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