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산책] 존재감

존재감

이 악물고 깡으로 버티더니

이토록 뜨거운 한 생이라니!

 

생을 건너는 감 다 떨어진 건 아니었나 보다

마침내, 꽃처럼 활짝 웃는 법을 배웠으니


까치밥이나 하라고 남겨둔 감이었는데 아침저녁으로 시끄럽게 울어대던 새들은 보이지 않고 저 홀로 익어가서 저토록 붉게 빛난다. 가히 존재감 하나는 독보적이다. 올해는 유난히 눈이 많이 오고 날이 춥다. 그래서 그런지 붉은 빛이 더 그립고 눈에 확 띈다. 청시에서 홍시가 되기까지 그 수많은 날들을 깡 하나로 버텨왔으니 어찌 붉지 않으리. 한 생의 완성이 저렇게 아름답고 고고하고 고결하다면 해볼 만하다. 하지만 모두 다 저렇게 아름답게 한 생을 마무리 할 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될까. 아무리 굳은 결심도 비바람, 땡볕에 속수무책으로 떨어져 버리고 그때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괜찮았을 거라는 뒤늦은 후회도, 있는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법이다.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을 타개할 그 어떤 힘도 남아있지 않다면 내일을 어찌 생각할 수 있을까. 일자리가 없어 빚이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사람들, 하루에도 수백 개씩 폐업을 결정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이 겨울을 더 혹한으로 내몬다. 저렇게 환하게 웃을 날이 있기는 할까.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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