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간, 대한노인회를 회고하다 (36)
박재간, 대한노인회를 회고하다 (36)
  • 관리자
  • 승인 2010.01.08 13:15
  • 호수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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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춘생 회장, 광복회 지인 상임부회장 영입
발신 불명 팩스 통해 필자 사임압력… 사무총장도 사퇴
김정호 후임 총장, 뛰어난 수완 발휘 굵직한 사업 유치


2000년 5월 중순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인사차 회장실에 들렀더니 광복회 출신의 안춘생 회장 심복 참모들이 모여앉아 무언가 수군거리고 있었다. 필자가 들어서자 안춘생 회장은 잠시 주저하다가 필자에게 팩스 한 장을 내밀었다.

“대한노인회 박재간 상임부회장이라는 자가 며칠 전 기획예산처 진 념 장관을 찾아와서 노인회에 회관 건축비 예산배정을 안 해주면 김대중 대통령의 며느리에게 말해서 장관을 혼내주겠다는 등 그는 청와대 인맥을 팔아 오만불손한 행동을 자행했는바 이는 노인회로서도 마땅히 그에게 책임을 물어 해임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발신인 불명의 얼토당토 않은,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괴문건이었다.

필자는 즉석에서 안춘생 회장에게 “이 괴문건의 내용을 믿느냐”고 반문했다. 필자는 그 자리에서 진 념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진위를 확인하려 했다. 그랬더니 안춘생 회장은 그럴 것까지는 없다며 만류했다.

이상하게도 안 회장의 태도는 시종일관 애매모호했다. 이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괴문건은 필자를 제거하고 광복회에서 같이 일하던 심복을 상임부회장직에 배치하기 위한 안춘생 회장 추종자들의 흉계임이 드러났다.

필자가 상임부회장직에 그대로 눌러 앉아 있으면 광복회에서 일하던 멤버들이 노인회에 파고들 틈새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꾸며진 흉계였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필자는 그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졌고, 또한 그들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임부회장직을 내놓고 말았다.
만일 필자가 그 조작된 팩스의 정체를 파헤치고 안춘생 회장과 그 추종자들의 흉계를 문제 삼았다면 노인회는 약간 시끄러워 질수도 있었다. 하지만 독립운동 유공자인 안춘생 회장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분을 억지하고 상임 직에서 물러났다.

그러자 안춘생 회장은 기다렸다는 듯 광복회의 심복을 상임부회장에 앉혔다. 그 후부터 필자는 비상임부회장으로 중앙회관 재건축위원회의 위원장직만 담당하기로 했다.

필자가 상임부회장직에서 물러난 지 1개월도 채 안된 어느 날, 안춘생 회장은 느닷없이 황인한 사무총장의 사표를 받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황 총장은 자신이 데려온 직원들과 손발이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황 총장의 사직은 노인회나 안 회장 자신을 위해서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강력히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춘생 회장의 결의는 확고했다. 사무총장을 해임시키기 위해서는 이사회의 인준을 받아야 했다. 인준을 받는 절차는 서면결의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사 대부분이 황 총장의 사퇴에 동의하지 않았다. 필자는 문제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만일 인준안이 부결되면 안춘생 회장에 대한 불신임결의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고민 끝에 노인회가 대외적으로 크게 망신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황인한 사무총장을 희생시키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필자가 직접 나서 인준안에 반대하던 임원들을 일일이 개별적으로 만나 인준동의안 서명을 받아냈다. 이로 인해 필자는 아직도 황인한 사무총장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

필자와 황인한 사무총장이 거의 동일한 시기에 노인회 운영에서 물러남에 따라 중앙회 업무는 상당이 어려운 고비를 맞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왜냐하면 노인회 운영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 집행부에 하나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황인한의 후임 김정호 사무총장은 예상외로 단시일 내에 노인회 업무에 적응하는 솜씨를 발휘했다. 김정호 사무총장은 오랜 기간 JC(Junior Chamber, 청년회의소) 활동을 했는데, 그 경험이 도움이 됐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가 취임한 초창기 몇 개월 동안 필자가 업무상 필요한 조언을 해주었던 것도 그가 단시일 내에 업무를 소화하는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김정호 사무총장은 노인회 발전을 위해서 봉사하려는 의지가 투철했고, 행정부처 인사들과의 관계도 원만했기 때문에 재임한 2년6개월간 그의 주도하에 많은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만한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그는 노인의 날 행사를 대한노인회가 주관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는데 기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노인의 날 기념행사는 전국노인단체연합회 주관 하에 이루어졌는데 김정호 사무총장이 당시 김원길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친분을 토대로 장관과 직접 교섭해 2000년 11월 2일 행사부터 대한노인회가 주관하기에 이르렀다.

두 번째 업적으로는 대통령기 전국게이트볼대회를 성사시킨 일이었다. 기존 대한노인회 게이트볼대회는 조흥은행이 후원하는 전국대회로 치러졌다.

그러나 조흥은행이 계속해서 행사를 지원할 여건이 되지 못해 고민하자 대한노인회는 청와대 또는 보사부 등과 접촉, 2001년 11월 1일 제1회 대통령기 전국게이트볼대회를 정부예산지원 하에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전국게이트볼대회를 매년 1회씩 연례행사로 치르기로 했는데,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김정호 사무총장은 수차례에 걸쳐 청와대의 이태복 수석, 그리고 보건복지부의 김원길 장관을 찾아다녀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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