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명인(名人)
황하강 황톳물 찍어 쓴 글
아무리 단단한 돌에 새기더라도
그걸 쓴 명인도
뒷 물결이 앞 물결 밀어내듯 사라지고
남은 자리는 늘 새로운 사람이 채우는 시간의 강
중국 서안에서 진시황릉 가는 길에 먹물이 아닌 누런 강물을 떠와서 혼신의 힘을 쏟아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는 사람을 만났다. 몇 분 동안이나 보고 있는데도 계속 글을 썼다. 글 쓰는 걸 그만 두고 일어서면 가서 눈인사라도 건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행객의 발걸음은 바쁘고 해서 내려올 때 인사라도 하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진시황릉으로 향했지만 투어를 마치고 내려오니 글을 쓰던 사람도 글씨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전국을 통일하고 중국 역사 이래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된 진시황이지만 한바탕 꿈을 꾼 것처럼 허망하게 사라지고 만 것처럼, 저토록 유려한 명문장가도 한낱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시간의 힘을 이기는 사람은 아직 없다. 명인, 명필이 다 무슨 소용인가.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덧없는 인생이다.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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