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아이낳기를 운동해야 하는 나라
[금요칼럼]아이낳기를 운동해야 하는 나라
  • 관리자
  • 승인 2010.01.22 13:26
  • 호수 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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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란 한서대학교 노인복지학과 교수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불과 20년 전까지 우리 사회 어디서든 익숙하게 듣고 보던 표어들이다. 자녀를 많이 낳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식한 사람 취급을 받았고, 자녀가 많은 가정은 사회적으로도 지탄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정부는 앞장서 출산을 억제하기 위한 묘안들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실제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저출산국가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드디어 목표를 달성한 지금, 우리 사회는 정반대의 고민에 빠져있다. 먹고살기도 힘들어서 아이를 너무 많이 낳으면 거지꼴이 될 줄 알았는데, 이젠 아이를 너무 적게 낳다보니 먹을 것을 만들어낼 일손마저 모자라 진짜 거지꼴이 되게 생겼다. 우리 국민들이 정부의 말을 너무 잘 들은 탓일까? 아니면 국민들이 무지해서 정부의 의도를 잘못 알아들은 탓일까?

말 그대로 20년도 못 내다본 정부의 빗나간 인구정책은 저출산과 그로 인한 급속한 고령화의 재앙을 몰고 왔다.

이미 다른 선진국들에서는 낮은 출산율을 우려하며 출산을 장려하고 있었건만, 그 광경을 고스란히 목격하면서도 우리들은 출산을 옥죌 생각만 하고 있었다.

얼마 안가 저출산은 바로 우리의 문제가 되었고, 우리 사회에는 새로운 표어들이 등장했다.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가가호호 아이둘셋 하하호호 희망한국.” 이제 출산억제운동을 펼쳤듯, 출산장려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70·80년대 출산억제의 성공이 과연 정곡을 찌른 표어들과 운동 덕분일까?

물론 적절한 표어로 국민을 계몽하고 행동적 실천을 장려한 노력도 조금은 작용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사회적 변화에 있었다.

남존여비의 시대로부터 양성평등 시대로의 변화, 가족주의 가치관으로부터 개인주의 가치관으로의 변화. 이것들이야말로 출산억제의 일등공신이다.

사실상 표어와 운동은 그런 시대적 변화에 기폭제 역할을 했을 뿐이며, 굳이 정부가 나서 출산을 억제해야 한다고 떠들지 않았더라도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자연적으로도 서서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고 정부가 앞장서 부산을 떨지 않아도 저절로 출산율이 다시 올라갈까?

불행하게도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왜냐하면 시대적 흐름은 이미 그에 역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개인의 불편을 감수하고 희생하면서라도 아이의 장래를 위해, 국가의 미래를 위해 둘째 혹은 셋째 아이를 낳기에는 우리 사회는 너무 이기적으로 변했고, 여성들에게 있어 경력과 사회적 성공은 너무 중요해졌다.

대세는 이미 저출산으로 기울어졌고, 그 대세를 되돌리기엔 힘겨운 형편이다.

급기야 전국 곳곳에서 ‘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본부’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있다. 아이낳기 좋은 세상이라…. 이제 국민적 운동을 통해서라도 아이를 늘려야 하는 시대가 됐고, 새마을운동으로 골목을 갈아엎고 지붕을 뜯어냈던 것처럼 아이낳기 운동을 통해 아이들을 늘려가려고 한다.

그런데,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얼마의 출산장려금이나 몇 일의 출산휴가를 대가로 결정하거나 시도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더군다나 지금 우리나라 저출산문제의 핵심적인 원인은 출산기피가 아니라 만혼(晩婚)과 비혼(非婚)이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즉, 아이를 낳기 싫어해서 저출산이 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늦게 결혼해서 출산시기를 놓치거나 아예 결혼 자체를 기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출산을 장려하기보다는 결혼을 장려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대책일 것이다.

아이를 낳으려면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려면 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취업과 경제적 안정이 이뤄져야 하며, 취업률이 올라가고 경제적으로 안정되려면 전체적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 돼야 한다.

즉, 살기 좋은 세상이 돼야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돼 사회 속에서 취업이 잘 되는 세상이 돼야 결혼하기 좋은 세상이 되며, 결혼하기 좋은 세상이 돼야 아이낳기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출산에 드는 비용이나 양육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 그것은 취업과 결혼 그 다음의 문제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분명 무슨 운동이라도 필요할 만큼 절박한 문제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운동은 비단 아이낳기 운동만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사회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즉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어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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