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산책] 적막

적막

새벽 3시

영하 30도

보름밤


몽골의 2월은 온통 눈밖에 없고 영하 30도의 추위였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한국의 날씨처럼 살을 에는 듯한 추위는 아니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3시는 그야말로 적막,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움직이는 것이라곤 굴뚝에서 흘러나오는 연기뿐, 달빛에 의지한 채 밤을 보내고 있는 게르는 평화 그 자체였다. 땅도 하늘도 집도 추위를 녹이는 연기조차 모두 흰 빛이어서 새하얀 장막을 둘러친 것만 같았다. 

세상과 고립되어 소음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킨 듯한 곳에서 보낸 그 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고 사는 게 피곤해지면 ‘영하 30도’, ‘새벽 3시’의 ‘보름밤’을 생각한다. 적막은 이 세상에서 소리가 사라지는 것, 그리하여 오직 빛과 형체만 남아 가장 순한 상태가 되는 것.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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