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신마비 늦깎이 여중생의 행복한 등교
반신마비 늦깎이 여중생의 행복한 등교
  • 안종호
  • 승인 2010.06.04 12:14
  • 호수 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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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일성여자중학교 입학한 박소형(66)씨
▲ 뇌병변 장애를 딛고 배움을 불태우고 있는 늦깎이 여중생 박소형(66·여)씨와 남편 이상규(68)씨가 일성여중고 학교 벤치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임근재 기자

의미 없는 죽음 두려워 일성여중고 진학
졸업 후 대학진학 목표…토익시험 치고파

뇌병변 장애를 딛고 배움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늦깎이 여중생이 있어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올 3월 어르신들을 위한 학력인정학교인 일성여자중학교에 입학한 박소형(66·여)씨다. 그리고 박씨의 옆에는 그림자처럼 곁을 지키는 남편 이상규(68)씨가 늘 함께 한다.

“최악의 경우, 못 깨어나거나… 깨어나도 평생 앉은뱅이로 살아야합니다.”

박씨는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던 지난 2006년 6월 6일. 담당의사의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남편 이씨는 평생 잊지 못한다. 그는 35년을 함께 했던 아내가 쓰려져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보름이 넘어서야 의식을 찾은 박씨는 수술 후 몸의 왼쪽부분을 본인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됐다. 마비 증세로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누웠다가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다. 결국 그때부터 아내를 밤낮으로 보살피는 일은 남편 이씨의 책임이 됐다.

‘아내는 내 그림자인 동시에 내 자신’이라고 말하는 남편의 지극한 간호 덕분에 아내 박씨의 건강은 조금씩 회복됐다. 하지만 남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TV 보는 것과 잠자는 일뿐. 문득 ‘이렇게 살다 죽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에 펑펑 울었다는 박씨. 그 후 박씨는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학교에 꼭 가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됐다.

“모험인 동시에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며 당시의 어려웠던 심정을 떠올리던 그녀는 “그 열정 때문에 지금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며 웃을 수 있다”고 이내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아내의 결심을 듣고 남편 이씨는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단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매일 4시간의 수업을 듣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학교에 오고가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혼자서 걷는 것조차 힘든 사람이 학교생활을 감당하는 것은 힘들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씨의 배움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쉽게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이씨는 아내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집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학교까지 아내를 등하교시키고, 교실에 앉히고, 화장실을 데려가는 일까지… 모두 남편의 몫이 됐다. 그래서 이씨는 아내가 수업을 받는 4시간여 동안 언제 걸려올지 모를 전화기를 두 손에 붙잡고 교실 밖에서 항시 대기 중이다.

이씨는 “아내에게는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걸 안다. 그 시간과 노력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서 내가 옆에 있는 것”이라며 “다른 사람들 의식 안하고 하고 싶은 공부하면서 떳떳하게 살게끔 돕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한다.

말을 하면서도 아내에게서 한 시도 눈을 때지 않는다. 행여나 아내가 균형을 잃고 넘어질까봐 인터뷰 내내 손으로 등을 감싸 안고 있다. 보는 이들을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박 어르신의 담임 김인숙 교사는 “한 번의 지각과 결석도 없이 토요일 특강까지도 모두 참석하는 우등생”이라며 “어르신 덕분에 학급 출석률도 올라가고, 서로 배려하고 챙겨주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새운다.

늦깎이 여중생에게는 최근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마치고,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다. “성악을 전공하거나 영어 혹은 그 외의 언어학을 전공하고 싶다” 고 말하는 그녀는 “영어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서 토익시험도 꼭 치러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도 함께 나타냈다. 서로를 의지하며 39년을 한결 같이 함께 해온 부부애야 말로 장애를 딛고 꿈을 향해 전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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