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1호 국악지도사 전영란(34)씨
탈북자 1호 국악지도사 전영란(34)씨
  • 연합
  • 승인 2010.07.02 11:05
  • 호수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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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서 연예인급 가야금 연주자
“합격 통보를 받고도 믿기지 않았어요. 여기 분들도 그렇게 힘들게 딴다는데 정말 됐을까 의심했죠. 며칠 지나니까 실감이 나고 이제 나도 떳떳하게 할 수 있는 게 생겼구나 긍지가 느껴져요.”

한국전통무형문화재진흥재단 북한예술정책과 전영란(34) 과장은 최근 한국국악교육원에서 주는 국악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아직 북한식 말투가 꽤 남아있는 전 과장은 불과 2년 전 남한에 온 탈북자다.

예술 분야에 강도 높은 교육과 훈련을 하는 북한이라 적잖은 탈북자가 국악지도사 시험에 응시했지만, 그동안 합격한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영란 과장은 고등학교 때 가야금을 시작해 예술대학에서 가야금과 민요를 전공했다.

도 예술단에서 7년 동안 활동한 전문가지만 남한에 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 버거웠기에 가야금을 다시 만진다는 건 사치였다.

북한의 도 예술단원은 공무원으로 국내 톱 연예인급 부럽잖은 인기를 누린다. 하지만 전 과장은 “이곳에선 그걸 누가 인정해 줄까 싶었다”고 했다.

“사실 처음엔 북한의 실상을 전하는 특강을 많이 나갔어요. 제가 잘 아는 부분이 문화 쪽이다 보니 북한 문화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냥 말로만 하는 것보다 직접 들려주는 게 나을 것 같아 가야금 연주를 시작했죠.”
남한 가야금은 12현이지만 북한은 1980년대 완전히 개량해 현재 25현 가야금을 쓴다.

왼손과 오른손을 따로 쓰면서 왼손으로 기교를 많이 부리는 12현 가야금과 달리 25현 가야금은 양손을 함께 쓴다. 다양한 음을 낼 수 있어 웬만한 서양음악도 다 연주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최근에는 퓨전 국악에서 많이 쓰인다.

전 과장은 “아이들이 이질감을 느끼고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북한 선생님’이라 부르면서 좋아하고 사인도 해달라고 한다”며 “그래도 한민족이니까 이렇게 받아주는구나 싶었다”며 밝게 웃었다.

가야금 실력이 입소문을 타고 번지면서 전국 초ㆍ중ㆍ고교에서 강연 요청도 이어졌다.

올해 초부터는 바쁜 시간을 쪼개 국악지도사 자격증 시험을 위해 짬짬이 이론 공부도 해야 했다.

“실기 시험은 25현으로 봤기 때문에 힘들 게 없었는데 필기시험이 어려웠어요. 전통음악이라 내용은 다르지 않지만 그동안 남북한 언어가 많이 달라졌잖아요. 여러 번 읽다 보니까 '이게 북한에서 쓰던 그 말이구나'하고 이해되면서 좀 수월해졌죠.”

퓨전 국악이 관심을 끈 덕에 북한의 25현 가야금이 아주 낯설지는 않지만, 전 과장은 한 심사위원에게서 “북한 음악을 우리 학생들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민족이지만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이질감을 많이 느끼잖아요. 문화나 언어도 마찬가지고요. 학생이나 시민을 상대로 남북한 전통음악을 가르치면서 문화 동질감을 확인하고 마음을 합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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