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과에 진학, 우리말과 옛 글씨체 연구하고파”
“국문과에 진학, 우리말과 옛 글씨체 연구하고파”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0.11.25 09:07
  • 호수 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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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만학도 수능 응시생… 김순향 어르신

▲ 2011학년도 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한 일성여자고등학교 김순향(70) 어르신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던 지난 11월 18일. 김순향(70·여) 어르신은 자신의 손자 손녀보다 어린 학생들과 당당히 한 교실에서 수능시험을 치렀다. 8시간이 넘는 기나긴 레이스를 마치고 돌아오는 어르신의 발걸음은 지친 기색 없이 오히려 가볍기만 했다.

“오늘은 내게 소중한 도전의 날이고, 뜻 깊은 경험의 날이다. 시험 전날 잠이 쉽게 오지 않아 걱정도 했지만, 크게 긴장하지 않고 마음 편히 봤다. 시험시간에는 18세 소녀로 돌아간 것 같아 설레기도 했다. 시험점수가 잘 나와서 원하는 대학의 국어국문학과에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웃음).”

60년의 세월을 넘어 꿈에 그리던 대학의 문을 두드리던 날. 김순향 어르신은 전쟁으로 인해 배움의 열정을 묻어야 했던 9살 소녀의 슬픈 시절을 떠올렸다.

“6남매의 막내인데다 ‘여자가 학교에 다녀서 뭣하냐’는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몇 날 며칠을 조르고 졸라 간신히 초등학교에 입학했어. 그런데 입학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일어난거야.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피난을 갈 때도 학교에 들고 갈 보따리를 들고 있었는데…. 학교에 다시 돌아가지 못 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지.”

김 어르신네 가족들은 피난을 떠나 경북 예천에 터를 잡았다. 하지만 그가 책과 다시 마주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5명이나 되는 언니, 오빠들조차 학업을 포기하고 농사일과 집안일을 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움의 대한 그의 열망은 끝이 없었다. 스무살에 결혼해 서울로 올라가서는 바로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치렀다. 검정고시에 합격을 계기로 못 배운 한을 풀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1971년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으로 만학도의 꿈과 함께 단란한 가정에 대한 꿈도 사려졌다.

남편의 죽음은 8살, 5살 된 두 딸에 이어 막내 아들이 태어난 지 100일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그동안 모아뒀던 재산도 남편의 병원비로 모두 써버려, 그는 젖먹이 아이의 분유값 마저 해결할 수 없는 신세가 됐다.

신 어르신은 갓난 아이를 엎고 떡장사, 건물청소를 비롯해 공장까지 다니며 밤낮없이 일했다. 자식들에게 만큼은 제대로 학교 교육을 받게 하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에서였다. 그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세 자녀는 건강하게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김 어르신이 ‘내 인생을 찾고 싶다’며 다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나서의 일. 어머니의 희생과 배움의 대한 열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막내 아들이 지난 2006년, 일성여중고 입학원서를 내밀면서 부터다.

김 어르신은 “입학원서를 본 순간 배움에 대한 열망이 순식간에 살아났다. 65세의 나이에 공부를 다시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남들은 다 늙어서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하냐고 말렸지만 배움에 나이가 무슨 소용이 있나. 학교 입학 후, 난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진짜 내 인생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과거의 아픔들을 잊고 중학교 과정 2년, 고등학교 과정 2년 등 총 4년의 시간을 오직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 결과 2011학년도 수능시험도 치뤘고, 이미 모 대학 국어국문학과 수시 모집에 응시 한 상태다. 그가 국어국문학과에 지원한 까닭은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옛 글씨체를 연구해 문헌에 남아 있지 않은 전통 민요와 시조 등을 기록하고 싶은 것.

김 어르신은 “나이 많은 사람들은 처음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는 단계가 가장 어렵다”며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야할 지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지금’ 시작하라고 알려주고 싶다”고 두 손을 불끈지며 힘줘 말한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사진=임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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