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로 作 노수별곡(老手別曲) 제3화] 달을 보고 짖는 개(11)
[서문로 作 노수별곡(老手別曲) 제3화] 달을 보고 짖는 개(11)
  • 관리자
  • 승인 2011.04.01 15:42
  • 호수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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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씨. 이거 야마시 치고 있는 거 아녀?”

정씨가 해서는 안 될 말을 불쑥 내뱉었다. 먼저 잃고 모여 있던 축들이 금방 들고 일어났다. 이씨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뭐라카노? 언 놈이고!”
정씨의 말은 경고성 위협이었다. 금세 정씨가 번복했다.
“에이, 시펄. 하도 패가 안 풀려서 그라제. 그냥 해본 소리여.”
“증거도 없이 판 깨지 마쇼. 화투판에서 말 잘못하면 어찌 되는지 알면서.”

광팔이 눈에 힘을 주고 정씨를 꼬나보았다. 나지막하게 말에 힘을 주었다.
노기사 영감은 신이 났다. 아직 판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제법 취기까지 올라서 한쪽에서 술 마시고 있던 이들에게 술 마시라며 되는대로 돈을 집어주기까지 했다.

“오늘 노기사 영감 아주 노났군.”
“씨벌. 아주 이름값을 하는데. 숙맥같이 생겨서 웬 운발이 저렇게 서?”

광팔은 이제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체력이 떨어지는 것도 그렇지만, 날이 트기 전에 어떻게든 쇼부쳐서 끝내야만 했다.

광팔은 계속해서 기회를 만들었으나 번번이 아슬아슬하게 놓치고 말았다. 정씨가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더는 기다릴 수가 없었다. 호구로 판에 끼워 넣었던 노기사 영감은 이제 역할을 다했다. 그런데, 이제 그만 제껴버릴라고 해도 묘하게 살아남았다. 정씨와 광팔 사이에서 힘겨루기 하는 끝에 어부지리를 얻고 있는 셈이었다. 있어 보이는 말로 ‘캐스팅 보트’라고나 할까. 생각보다 정씨가 만만치 않았지만, 아직 광팔은 여유가 있었다. 진짜 카드는 아직 꺼내지도 않았던 것이다. 광팔이 홍련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자신의 모든 힘을 다했는데도 홍련이 그런 태도를 보였다면, 광팔은 깨끗이 포기했을 것이다. 젊음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력한 힘이지만, 반대로 젊기에 가질 수 있는 ‘희망’이란 어리석게도 자신의 힘을 상대에 견줘 가늠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힘이 제일인줄 착각하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젊음’이었다.

광팔은 정씨와 노기사 영감 둘다 ‘상황’이 만들어 놓은 우연의 이익을 나눠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운은 언젠가 다하는 법이다. 광팔은 이런 아마추어 판에서 꺼내기 쑥쓰러웠던, 자신의 진짜 기술을 펼쳤다.

‘이걸로 끝이다. 자식들아.’

드디어 팔이 떴다. 도박판에서 광팔이 애용하는 패는 팔광이었다. 달이 둥그렇게 뜬 밤. 화투짝을 처음 잡을 때부터 광팔은 팔이 제 인생의 히든카드가 되리라는 것을 운명으로 느꼈었다. 아, 이름부터가 뽀대 나지 않는가. 팔땡으로 마무리하는 광팔의 운은 빗나간 적이 없었다. 팔광이야 광땡에도 있었으나 여간해서는 광땡으로 마무리를 하지 않았다. 촌티 나는 놈들이 꼭 폼 나게 광땡으로 집어먹으려고 하는 법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사정이 좀 여의치가 못했다. 정씨가 어떤 잔재주를 부릴지 걱정이 되기도 했고, 이상하게 꼬이는 판세 때문이었다. 광팔은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 평소엔 잘 쓰지 않던 광땡 패를 자신의 몫으로 돌렸다. 오늘은 큰 맘 먹고 지른 셈이었다. 어떤 패도 광팔을 이길 수는 없었다. 사사니 짓고 삼팔 광땡. 석장을 뒤집어 놓고 두 장의 화투를 한손에 그러쥐었다. 사쿠라 밭 위에 달이 둥실 떠올랐다. 정씨는 구땡, 노기사 영감은 오땡으로 패를 돌렸다. 광팔은 침착하게 끊을 듯 이을 듯 판돈을 키워갔고, 노기사 영감은 예상대로 겁 없이 질러댔으며, 정씨는 의심의 눈초리를 번득이면서도 추이를 보아가며 따라왔다.

“거시기, 요번 판으로 대충 판세가 가름되겠구먼?”
돈다발이 수북이 쌓였다. 드디어. 광팔은 이제 투망질 한번으로 그 미끈거리는 놈들을 쓸어 담을 것이었다. 한쪽에 몰려 있던 이들이 슬금슬금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구경들을 했다. 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고, 베팅이 계속될수록 입이 바싹 말랐다. 판이 깨지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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