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로 作 노수별곡(老手別曲) 제3화] 달을 보고 짖는 개(12)
[서문로 作 노수별곡(老手別曲) 제3화] 달을 보고 짖는 개(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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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4.08 15:15
  • 호수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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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그런 패착이 나올 수 있었는지, 광팔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의 실수라면 너무나 어이가 없었고, 정씨의 기술이었다면 노기사 영감이 이긴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노기사 영감과 정씨가 짰다고 생각하기에도 가능성이 너무 희박했다. 노기사 영감을 끌어들인 것은 정씨가 아니라 광팔이었다. 판을 시작하기 전까지 정씨와 노기사 영감은 말 한번 맞춰볼 틈이 없었다.

“대충 펴 봅시다. 어차피 이 판으로 결정 날 것 같으니.”
광팔이 침착하게 판을 정리했다.
“난 땡인데. 내가 먹지 않았을까?”

노기사 영감이 비실비실 웃음을 흘리며 안경을 치켜 올렸다.
정씨가 코웃음을 치고는 패를 내려놓았다.

“니미. 말로는. 펴 보드라고. 땡 안 잡고 여까지 왔을까? 자. 콩콩팔 놓고 구땡”

정씨가 패를 내려놓자마자 뒤이어 노기사 영감이 신이 나서 제 패를 금방 내려놓았다. 촐랑거리는 꼴이라니. 광팔이 보기에 저 덜 떨어진 영감은 도박이 아니라 뭔 일을 해도 얼치기로 살다가 단물 쓴물 쪽 빨려왔을 위인이었다.

“이야, 끝까지 올만 하네요. 하지만, 난 니오쌈 놓고 장땡. 하하하!”

정씨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고, 순간 광팔을 쳐다보았다. 광팔도 순간 당황했다. 광팔이 노기사 영감에게 준 것은 분명 삼칠장에 오땡이었다. 그러나 오땡이든 장땡이든 광땡을 이길 수는 없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광팔이 점잖게 패를 내려놓았다.

“허. 안됐시다. 사사니 놓고 광땡입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화투판을 가운데 놓고 둥그렇게 감싸고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순간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광팔은 이제야 드디어 끝났다는 느낌을 받으며 맥을 탁 풀었다. 정씨가 갑자기 발악하듯 튀어 올랐다.

“음마, 이 씹새끼바라! 이 새끼가 어디서 야바위를 친다냐!”

“야바위는 누가! 씨팔, 돈 잃고 왜 딴소리야! 돈 질러댔으면 자기 책임인거지! 증걸 대던지! 씨발 곤조 부리면 누가 넘어간대? 어떤 놈은 노름판에 나오면서 집에다 곤조통 붙들어 매놓고 나오는 놈 있어?”

이젠 뒤처리만 해내면 될 터였다.

“에이 참. 거. 설마 광땡일 줄이야. 지은 거나 확인 해 봅시다.”

노기사 영감이 입을 쩝쩝거리며 광팔이 지어 놓은 엎어진 석장에 손을 뻗쳤다. 광팔은 순간 노기사 영감의 손을 낚아챘다. 노기사 영감에게 그럴 재주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노름판에 익숙한 광팔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 짧은 찰나에서도 패를 바꾸는 기술은 웬만한 놈들은 다 가지고 있는 기술이었다.

“이게……. 뭐야? 사, 칠, 이. 십삼이잖아!”
“얼레? 못 지었구먼!”

순간 광팔은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엎어진 석장의 패는 흑싸리 두 장과 매화 한 장이 아니라 매화 한 장과 흑싸리, 홍싸리 각 한 장씩이었다.

“허허……. 이거 박씨 이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노기사 영감 어수룩하다고 알로 먹으려 들었구먼.”
“예끼, 이 사람아!”

광팔은 어안이 없었다. 기세 좋게 소리치던 정씨도 넋이 나가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거. 미안해서 어쩐다. 박씨 덕분에 오늘 횡재했네. 아침에 재수 떼기를 해 봤더니 달밤에 재물 횡재수가 있기는 하더만. 에잇. 혼자 먹을 수 있나. 자자. 백만원씩들 줄 테니까 새벽 차 다닐 때까지 패자 부활전이나 하시지요. 우리 장씨랑 이반도 오십씩 드리리다. 밤길 가기 무서운데, 나 좀 데려다 주고.”

광팔은 멍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그마치 육천만원에 가까운 돈이 노기사 영감의 가방으로 쓸려 들어가고 있었다. 광팔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런 홍싸리 껍데기 같은 영감한테 당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씨가 옆으로 와서는 패자 부활전이나 해서 본전이나 되찾자고 촐싹댔다. 무엇엔가 홀린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던 광팔은 제 앞에 놓인 화투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팔광의 둥근 달 위로 홍련의 얼굴이 잠깐 비쳤다가 사라졌다. 노기사 영감은 흥얼대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촉견폐일(蜀犬吠日)이라더니, 폐일(吠日)이 아니라 폐월(吠月)이구나…….” <끝>

☞촉견폐일(蜀犬吠日)
‘삼국지’에 나오는 고사로, 촉나라 땅은 사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 싸인 데다가 하늘에는 운무가 짙게 덮여 좀처럼 해를 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촉나라의 개는 해만 보면 짖었다. 식견(識見)이 좁은 사람이 현명한 사람을 오히려 비난(非難)하고 의심(疑心)한다는 뜻으로 쓰임.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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