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교직경험 살려, 노인 한글교실 자원봉사
은퇴 후 교직경험 살려, 노인 한글교실 자원봉사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4.20 08:45
  • 호수 2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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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배움터 강사 이성재(67) 어르신

40여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2009년 정년퇴임한 이성재(67)씨에게 최근 아주 특별한 15명의 제자가 생겼다. 현직에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처럼 제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의 평균연령은 65세다. 동년배의 제자들을 가르치는 곳은 서울구로종합사회복지관.

이씨는 “은퇴했다고 반평생 쌓아 온 가르침의 노하우를 그냥 묵히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일반교사 시절에 인연을 맺었던 복지관 한글교실에 다시 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가 어르신들의 한글 선생님으로 나서게 된 계기는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평교사였던 그는 방과 후 아이들 한글교실 자원봉사자로 사회복지관을 자주 찾았다. 하지만 마땅한 노인 프로그램이 없어 복지관 주변을 배회하는 어르신들이 더 마음에 걸렸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는 복지관장을 찾아갔다. ‘강사는 내가 맡을테니, 노인 한글교실을 개설할 수 있도록 교실과 인원을 모집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씨의 작은 관심이 ‘노인 한글배움터’의 시작이었다. 그는 교감으로 발령받아 다른 지역으로 학교를 옮길 때까지 3년 동안 그 곳에서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그 후 10년의 시간이 흘렀고, 교직에서 물러난 이씨는 같은 장소에서 새로운 제자들을 맞았다. 동년배 제자들을 얻은 그의 감흥은 남달랐다.

그는 “어릴 때 떠났던 고향을 다시 찾은 느낌입니다. 제2의 교육자 인생을 선사한 나이 많은 제자들을 보면 감동과 기쁨이 몰려오지요. 지금까지는 ‘나’를 위해 살아왔으니 은퇴 후에는 ‘남’을 위해 살아보자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찾은 구로종합복지관에서 아직도 한글교실이 운영 중인 것을 알고, 주저없이 강사로 참여하게 됐지요”라고 말했다.

이씨는 아이들과는 달리 더디게 배우고, 천천히 익히는 노인들의 특성을 고려해 ‘수다형 대화수업’을 통해 한글을 익히는 수업방식을 택했다. 이를테면 봄철 쑥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쑥떡’ ‘봄나물’ ‘쑥고개’ 등의 연상단어를 떠올리며 글을 익힌다.

“집중력과 이해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노인들을 위해 수업 중간에 안마, 손뼉치기, 어깨 돌리기, 노래부르기 등은 기본입니다.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며 한글을 배우기 때문에 학업성취도도 높은 편이지요. 어르신들이 글을 익힌다는 부담감을 떨치기 위해 직접 고안한 학습지도 노하우지요(웃음).”

재미있는 수업방식 때문이었을까. 15년 전 한글교실 강사였던 이성재 선생님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초창기 학생들이 5명이나 다시 찾아왔다.

복지관 봉사활동을 시작한 후 오히려 그는 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교과서가 없기 때문에 수업 때마다 사용할 교재도 직접 만든다. 수업 후에는 어르신들의 개인 과외도 하고, 상담사 역할도 한다. 또 하루 2시간의 정해진 수업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린다.

그는 “경험과 지식을 나누기 위해 시작한 봉사에서 오히려 인생을 배우고 있습니다”라며 “늦깎이 만학도들을 보면서 가르침을 사명으로 생각하며 살았던 내 인생의 마지막을 아주 즐겁게 그려가고 있지요. 내가 뿌린 작은 씨앗들이 다른 사람의 삶에서 풍부해지는 것을 볼 때 행복해집니다”고 말했다.

은퇴 후 그가 봉사활동에 참여한 시간은 1만 시간을 넘었다. 1년을 꼬박 봉사활동에 참여해야만 가능한 시간이다. 그러나 이씨는 대단한 일이 아니라며 손사레를 친다. 봉사활동이 알려지면 그게 무슨 봉사활동이냐고 오히려 되묻는다.

가르침에 대한 퇴직교사의 열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안마, 지압, 응급처치법, 사혈(침) 등을 배워서 고령의 제자들과 더욱 다양한 수업을 진행할 목표를 세우고 있다. 또 다문화가정의 외국인 부모와 아이들을 위한 한글교실 강사 봉사활동도 참여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이씨는 “우리말 익히기에 열성을 다하는 백발의 제자들의 용기와 열정에 끝까지 동참하고 싶다”고 말한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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