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 삶에 행복 가득 채워 준 ‘소월경로당’
[기고] 내 삶에 행복 가득 채워 준 ‘소월경로당’
  • 관리자
  • 승인 2011.10.21 15:03
  • 호수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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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겸 경기 군포 소월경로당 총무

1999년 경기 과천에서 군포시로 이사왔다. 낯선 곳에서 일흔을 넘긴 노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일자리 찾기였다. 내가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백방으로 수소문해도 좀처럼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아파트 내 소월경로당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처음 방문한 경로당이었지만 낯설지가 않았다. 오히려 친근한 분위기마저 들었다. 고민할 여지없이 바로 회원 등록을 마치고, 다음 날부터 경로당에서의 일상이 시작됐다. 아침 9시면 인근의 수리산 산책을 마치고 어김없이 경로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소월경로당에는 저마다 사연 있는 다양한 노인들이 모여 있다. 꽃쁜이, 이쁜이, 강능택, 춘천할머니, 조끼할아버지, 키 큰 할아버지, 곱슬머리 할머니, 팔단지 할머니 등 호칭만 불러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경로당에만 오면 별난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경로당은 세상의 작은 축소판이다. 독서와 장기, 바둑 등으로 함께 우애를 다지고, 점심 때가 되면 함께 음식도 만들어 먹는다. 서로 어려운 일을 당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돕고, 때론 어린 아이처럼 큰소리로 다투기도 한다. 함께 울고 웃는 가족들 같다.

사람 사는 분위기에 취해 몇 달을 즐겁게 생활했다. 그런 모습을 좋게 봤던지 경로당 회장으로부터 부회장직을 권유받았다. 건강을 염려하는 회장의 손길을 거절할 수 없어 그때부터 청소와 부식구매 등의 여러 잡무를 맡게 됐다. 이듬해부터는 총무로서 경로당 살림살이를 담당하고 있다.

호기심 반, 기대감 반으로 찾아갔던 작은 경로당. 그곳에서의 생활이 내 노년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물론 당시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처음 경로당을 찾아가 느꼈던 가족같은 느낌을 계속 유지하고픈 마음 뿐이었다. 그래서 즐거운 경로당 만들기에 앞장섰다. 그러다보니 매일 아침 8시면 경로당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주변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게 하루일과의 시작이 될 정도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경로당 운영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애썼던 일을 비롯해 회원배가를 목표로 동분서주했던 일까지 모든 기억이 생생하기만 하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2008년, 자녀들을 모두 미국에 보내고 홀로 생활하는 87세 할머니가 경로당에서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다. 응급조치와 건강상태 등을 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알리고, 한국에서의 장례절차까지 도왔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어머니를 잃고 찾아 온 아들의 회한의 눈물이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다.

잘 한 일은 없지만 열심히 봉사한다는 마음만은 늘 간직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 결과 매년 군포시와 대한노인회 군포시지회가 104개 경로당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모범 경로당에 항상 상위권으로 선발되곤 했다. 경로당을 섬기는 일꾼으로서 더없는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회원들의 추천으로 여러 차례 표창까지 받았으니 인복을 타고난 것 같다. 6회의 군포시장 표창에 이어 올해 10월 2일에는 노인회날 기념식 때 대한노인회 경기도연합회장 표창까지 수상했다. 감격있는 시상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올해는 우리 경로당 회장이 대한노인회 군포시지회장으로 선출되는 겹경사를 누렸다. 10년 동안 노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보낸 시간들이 내겐 더없이 소중한 재산이었음을 다시금 느끼는 계기가 됐다.

지난 10여년의 시간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경로당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회원의 평균 나이가 75세에서 81세로 높아졌다. 그만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경로당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강조될 것이다. 경로당이 모든 노인사회의 기초라는 생각으로 경로당 발전과 회원배가를 위해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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