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산책] 반감기

반감기

다시 돌아가는 시간만큼은

올 때보다

더디 갔으면 좋겠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라잖아


한 생을 살다가 돌아갈 때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살아있길 원하는 건 본능이며 아무리 살아가는 일이 힘들어도 끝까지 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이런 삶이 다시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바스러져서 완전히 흙이 될 때까지 천천히 자연의 일부로 되돌아가는 걸 볼 때면 나 또한 내 흔적을 모두 깨끗이 지우고 완벽하게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쉽지 않다. 어차피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터인데 그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지만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비로소 아름다웠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은 가장 자연스럽게 나를 지우는 거라는 걸 잠시 깨닫는다. 하지만 오늘도 SNS 여기저기에 써놓은 글들이 내가 가고 없는 뒤에 여전히 남아있을 거라는 걸 생각하면 나의 반감기는 도무지 계산이 되지 않는다.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반감기 : 방사성 원소나 소립자가 붕괴 또는 다른 원소로 변할 경우, 그 원소의 원자 수가 최초의 반으로 줄 때까지 걸리는 시간. 악티늄 217은 100분의 1.8초, 우라늄 238은 45억 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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