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의료지시서’로 존엄성 지킬 수 있다
‘사전의료지시서’로 존엄성 지킬 수 있다
  • 박영선
  • 승인 2006.12.16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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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와 생명윤리 세미나(죽음준비와 법률문제)

재산 사체처리 매장문제 등 사전지시 필수
유족 혼란 막게 생전 의사표시 명확히 해둬야

 

성산생명윤리연구소가 지난 2일 창립 9주년을 맞아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C강당에서 ‘고령화 사회와 생명윤리-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란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는 고령화 사회에서 꼭 필요한 생명윤리와 ‘삶의 아름다운 마감’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유인협 소장은 인사말을 통해 “고령화 사회를 맞아 정부가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만드는 등 다양한 대책을 준비하고 있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아름다운 마감’을 위한 죽음준비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며 “그러나 한편으로 죽음의 준비는 안락사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만큼 생명윤리 차원의 고민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소장은 이어 “고령 인구의 증가를 사회적 부담으로 여기는 현실에서 죽음의 준비는 생명에 대한 위협, 원하지 않는 압력이 될 수 있다”며 “오늘 이 자리를 통해 고령화 사회에 꼭 필요한 생명윤리와 개인 및 가족 차원에서 ‘삶의 아름다운 마감’을 준비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고민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주제와 관련해 △고령화 사회의 현실과 대책(박용구 경기 군포노인복지회관 관장) △죽음 준비와 법률문제(이광수 변호사) △노인과 호스피스(최화숙 이화여대 교수) △노인에 대한 성경적·신학적 이해(강웅산 총신대 신대원 교수) 등 4가지 주제로 발제가 있었다. 이 중에서 인간의 생(生)과 사(死)에 있어 꼭 필요한 법률적 문제와 대안을 제시한 이광수 변호사의 ‘죽음 준비와 법률문제’에 대해 요약 정리한다.

 

이광수 변호사는 주제 발표를 통해 △유언에 의한 재산분배 △상속권의 사전포기 허용 여부 △빚이 상속되지 않도록 취해야 할 조치 △유언의 방법 △장기이식·사체기증·매장방법 △사전의료지시서 문제 등 실제 상황에서 필요한 법률적 내용과 의견을 밝혔다.

 

사람의 사망으로 인해 발생하는 법률적 문제는 크게 재산에 관련된 문제와 사체 처리 및 매장 등에 관한 문제로 나눌 수 있다.

 

최근에는 이와 함께 노령화 또는 급작스런 사고 등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표시가 불가능한 소위 ‘식물인간’이 될 경우 가족 등 보호자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사전에 지시해 두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면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먼저 재산 문제에 대해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재산과 관련된 법률문제는 사망자가 사망 당시 보유하고 있던 재산에 대한 유언과 상속이 있다. 유언에는 재산 문제뿐 아니라 매장방법의 선택, 사체 및 장기·조직의 기증 여부에 대한 의사 표시 등의 내용도 포함된다.

 

이 변호사는 “피상속인(고인)이 상속재산을 나누는 방법을 지정하지 않고 사망할 경우, 상속인들이 원만하게 타협하거나 고인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의사가 없는 한 법적 분쟁의 불씨를 안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유언증서 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 고인의 유지가 생전 뜻과 다르게 반영될 수 있다”며 “재산분배를 지시하는 유언에 있어서는 현행법과 법원이 엄격한 방식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가급적이면 유언에 관한 경험을 가진 전문가와 의논해 처리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이와 함께 최근 그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대되고 있는 ‘사전의료지시서’에 대해 거론했다.

 

‘사전의료지시서’란 불의의 사고나 기타 원인으로 본인이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때를 대비해 자신의 장기나 신체조직 및 사체에 대한 기증 의사를 미리 문서로 표시해 두는 것으로 현행법상 유효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허용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90년에 ‘환자자기결정법’(patient self` determination act)을 만들어 환자가 적법하게 유언장이나 의료위임장을 만들 수 있는 권리를 병원 등 환자들을 취급하는 의료기관에 명시해 놓아야 한다고 법률적으로 정하고 있다.

 

이 법률에 의거해 미국의 모든 의료기관에서는 환자들이 ‘사망선택유언’(living will)이나 ‘항구성 대리위임권(자)’과 같은 형태의 사전의료지시서(advance directive)를 쓸 수 있는 기회를 환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아직까지 안락사가 합법적으로 허용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사전의료지시서에는 자신의 매장 방법·사후 장기기증 등 시신의 처리 방법을 지시하거나, 동등한 수준의 의학적 치료방법 중 어느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하는 정도로만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즉 자연적인 순리를 벗어나 생명을 단축하거나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없는 치료방법을 선택하는 것과 같은 지시는 무효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이로 인해 유족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으므로 가급적이면 생전에 장기나 사체기증 여부에 대한 의사표시를 명확히 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아울러 한편으로는 사전의료지시서가 ‘안락사’ 문제 등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된 논쟁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고 말했다.

 

박영선 기자 dreamsun@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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