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
17 정정화(鄭靖和, 1900.8.3~1991.11.2)
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
17 정정화(鄭靖和, 1900.8.3~1991.11.2)
  • 관리자
  • 승인 2012.09.14 16:02
  • 호수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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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해설=시인 이윤옥

 

압록강 너머 군자금 나르던

임시정부 안주인 ‘정정화’

장강의 물은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니다
지금 사람들
강물 위에 배 띄워 노래하지만
물의 근원을 캐는 사람은 없다

혈혈단신 여자의 몸
압록강 너머 빼앗긴 조국 땅 오가며
군자금 나르던 가냘픈 새댁
그가 흘린 눈물 장강을 채우고 넘친다

돌부리에 채이면서
몇 번인가 죽을 고비 맞으며
수십 성상 국경 넘나든 세월
거친 주름 돼 골마다 패어있다

바닥난 뒤주 긁어
배고픈 독립투사 다독이며
가난한 임시정부 살림 살던 나날
훈장 타려 했었겠나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뛰어온 구국의 일념
압록의 푸른 물 너는 기억하겠지


“26년이라는 전혀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나는 임시정부와 같이 살았다. 백범의 말대로 거지나 다름없는 상해 시절 어느 때는 이동녕, 차리석, 이시영 같은 분들과 시장 뒷골목에서 동전 한 닢짜리 중국 국수 찌꺼기를 달게 사먹기도 했고 등 뒤로 왜놈의 기관총 쏘는 소리를 들으며 임정의 피난 짐보퉁이를 싸기도 했다. 이동녕 선생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볼 때나 백범 부인 최준례 여사의 식어가는 손을 보듬어 쥐었을 때는 마치 암담한 조국의 꺼져 가는 숨결이 내게 와 닿는 듯했고 하늘을 깨뜨릴 것 같은 드높은 사기로 무장된 청년 광복군들이 이국의 하늘 밑에 나부끼는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는 당장 내일이라도 독립된 조국을 품에 안을 듯싶었다.”

자서전 ‘장강일기’에서 정정화 여사는 그렇게 임시정부의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했다.

정정화는 백범 김구가 ‘한국의 잔 다르크’라고 칭송했던 여성이며, 상하이임시정부 주요인사를 비롯한 독립투사들에게는 ‘임정의 어머니’ ‘자동이 엄마’라고 불린 5척 단신의 독립투사다. 특히 어린나이에 독립투사로 활동하며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맡아서 해 ‘임정(상하이 임시정부)의 어머니’라고도 불린다.

1900년 8월 3일, 아버지 정주영과 어머니 이인화 사이에 2남4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독립운동에 뛰어든 것은 시아버지 동농 김가진 선생의 영향이 컸다. 김가진은 비밀결사 대동단(大同團) 총재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항일운동이 급박했던 시설 시아버지와 남편 김의한이 상해로 몰래 망명한 소식을 신문에서 접한 정정화는 친정아버지를 찾아가 시아버지를 돕겠다며 돈 8백 원을 얻어 1919년 3·1운동 직후 스물 한 살의 젊은 나이에 국경을 넘어 상해로 향했다.

정정화는 1930년까지 12년 동안 임시정부의 재정 지원을 맡았다. 목숨을 걸고 여섯 번이나 국내를 왕복하는 험난한 길이었지만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독립운동에 사용될 거액의 운동자금을 모집했고, 왜경의 감시가 심한 압록강을 넘나들며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임무를 훌륭히 해냈다.

정정화는 지금으로 치면 코흘리개 소녀인 11살짜리 어린 신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개화파 집안의 며느리가 되면서부터 세상물정에 눈을 떠갔다.

그의 시아버지 동농 김가진은 명문가 안동 김씨 출신이나 서출로 어려움을 겪다가 서출 출신으로는 조선왕조 오백 년 사상 처음으로 종일품의 직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서예가 출중해 ‘독립문’과 안동의 ‘봉정사’ 등 전국의 이름 있는 편액 상당수가 시아버지 김가진의 글씨이다.

동갑내기 남편 김의한은 3·1만세운동 후 국내에서 국권회복운동이 여의치 않자 시아버지와 상해로 망명했다. 정정화는 며칠이 지나도록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국내 신문을 보고서야 망명 사실을 알았다. 그만큼 국내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던 시절이었다.

1932년에는 윤봉길의 상해 홍구공원 의거 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임시정부가 절강성(浙江省) 가흥(嘉興)으로 이동함에 따라 이동녕, 김구, 엄항섭 등과 함께 이동하면서 임시정부 안살림을 도맡았다.

1934년에는 한국국민당에 입당해 활동했으며, 1940년에는 한국독립당의 창당요원, 한국혁명여성동맹, 대한애국부인회 훈련부장 등 독립운동의 길이라면 안살림이든 바깥일이든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인정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민족시인 이윤옥 씨가 집필한 시집 ‘서간도에 들꽃피다’의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서간도에 들꽃피다’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집대성한 최초의 시집으로 저자가 10여년 동안 중국, 일본을 비롯한 전국을 누비며 수집한 사료를 토대로 구성됐습니다. ‘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를 통해 역사 뒤편에 묻혀있던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행적과 업적,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문의 02-733-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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