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어머니와 장애 가진 딸 부양하는 ‘효녀’
치매 어머니와 장애 가진 딸 부양하는 ‘효녀’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2.09.28 16:17
  • 호수 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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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치매극복의 날’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수상자 김영희(37)씨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자신만의 공간’에 갇힌 제 어머니 앞에서 어리기만한 막내딸로 있을 수 있다는 것, 제게는 축복일 따름입니다.”

‘제5회 치매극복의 날’에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은 김영희(37)씨는 “상은 제 이름으로 받았을 뿐 남편과 시부모님, 그리고 주변에서 저를 도와주신 분들께 주어진 것”이라며 “수상보다도 이로써 어머니에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게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김씨의 어머니 김향애(72) 어르신은 지난 2008년 알츠하머성 치매라는 진단을 받았다. 어머니는 김씨가 대학교 2학년때 고속버스와의 충돌사고로 전두엽 부위를 다쳤다. 현재는 알츠하이머성 치매로 뇌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상태다.

평소 그 흔한 ‘부부싸움’ 한번 안 하셨던 부모님이셨다. 김씨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인 1995년 12월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1년간의 투병 끝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그로부터 4개월 후 교통사고를 당했다. 손끝과 발끝을 뜨거운 물수건으로 주무르고 6개월 동안 매일 목욕수발을 들었던 김씨의 헌신 때문이었을까. 한 달간 혼수상태로 사경을 헤매던 어머니는 극적으로 회복했다.

“말씀도 적고 가정에 충실한 전형적인 주부였습니다. 귀가하면 늘 요리하시던 모습, 눈에 선해요. 쉬운 게 아닌데 친정과 시댁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유지하셨죠. 그런 어머니셨어요.”

지혜롭기만 하던 어머니는 치매 진단 후 건강을 과도하게 챙기는 강박증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친정 아파트를 처분하고 시부모님과 거주 중인 5층짜리 빌라의 2층에 모시게 됐다.

“어머니는 환각과 배회 증상이 가장 심했습니다. 한번은 이틀 동안 실종되셨다가 경부고속도로 근처에서 발견되신 적도 있었어요. 아찔했죠.”

밖에서 잠금장치를 해야 한다는 조언에 ‘어머니를 그렇게 가둬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는 김씨. 하지만 이때부터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산책 중에도 ‘세입자와 금전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등의 망상으로 안절부절못했다.

김씨는 “본래의 인격이 아니라 뇌신경세포 손상으로 욕도 하고 자제심도 떨어진다는 것, 각종 이상행동은 상실감 때문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장애를 앓는 둘째 딸을 둔 저는 더욱 어머니를 혼자서 감당하기 버거웠습니다. 시댁에 도움을 요청하고 말벗도우미나 치매관련 기관과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죠. 한번 실종됐던 후에는 데이케어센터도 이용합니다.”

그는 “함께 있으면 호전되는데 하루 종일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진단 전 10여년 동안 서서히 증상을 보인 어머니를 보며 김씨는 “치매 증상이 제가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는 고통으로 인한 행동이었음을 깨달을 때 가장 괴롭다”라고 전했다.

“어머니가 겪는 외로움은 일반의 경험치를 넘어선 외로움입니다. 그걸 ‘영혼이 겪는 외로움’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외로움과 허무함 가운데 어찌할 바를 모르시는 겁니다.”

망상이 짙어지면서 그 속에서 허덕이는 어머니를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었던 김씨는 방법을 터득하게 됐다. 바로 ‘이해와 공감’이었다. 김씨가 사실 여부를 막론하고 어머니를 이해해주면 바로 짙은 망상에서 빠져나왔다. 다그치고 외면할수록 망상 안에 갇혀버리곤 했다. 그리고 이상행동으로 이어졌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가장 힘든 것은 어머니의 이상행동이 아니라 김씨가 치매환자 보호자로서 느끼는 피해의식이었다.

“초반에는 어머니보다 치매가 커보였고 보호자로서의 괴로움에만 빠져있었죠. 하지만 치매환자에 대해 먼저 보호자부터 편견을 버려야 주위 시선도 편견을 버립니다.”

김씨 내외는 어머니의 이상행동에 대한 외부의 시선을 더 이상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그 덕분에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타인이 보면 지적장애 딸과 치매 어머니는 감당 못할 짐과 고통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경제적으로나마 어머니가 힘들지 않을 수 있는 여건에 다행일 뿐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어머니 바로 그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신 거잖아요. 아프셔도 저는 어머니라는 그릇에 담기는 작은 그릇, 제 딸은 제가 품어야 하기에 저보다 작은 그릇입니다. 딸과 어머니는 이처럼 삶의 질서 속에 있다고 생각해요.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히면 해결책이 안 보여요. 돌봐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온다는 것, 그래서 환자와는 매순간 행복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씨는 “어머니가 아프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짜증내고 투정부리는 딸이었을 거예요. 저를 곱게 잘 길러주신 것, 그 과정에서 애정으로 돌봐주신 것에 감사드린다고 전해드리고 싶어요”라고 했다.

“어머니의 내력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딸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망상행동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기저귀를 차고 눈도 잘 안 보이는 장애를 앓는 둘째 딸과 소통하며 돌보는 과정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어머니를 더 세심히 돌볼 수 있으니까요.”
이호영 기자 eesoar@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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