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2013년 대한민국서 노인으로 산다는 것
[금요칼럼] 2013년 대한민국서 노인으로 산다는 것
  • 관리자
  • 승인 2013.01.25 15:16
  • 호수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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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풍요’와 ‘재생’의 뜻을 갖는 뱀의 해, ‘계사년’ 새해에 ‘대한민국에서 노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음미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공약에서 밝힌 대로 노인들을 위한 기초노령연금을 2배로 올린다 하니 새 정부에서는 노인들을 제대로 대접하려는 것 같다. 물론 예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연령과 개인의 소득 정도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방향으로 조정이 되겠지만, 어떻든 ‘노인=가난’이라는 등식이 좀 해소되고 움츠러들었던 노인들의 어깨가 다소 펴질 전망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대체로 노인이 살기에 피곤하다. 젊음을 추앙하는 문화가 너무 강해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노인들이 자기주장을 펴고 노인문화를 향유는 게 여간 눈치 보이는 게 아니다. 인간의 사고방식이 개인주의화 되고 IT가 널리 보급돼 정보화된 사회에서는 노인들이 서있는 땅이 위협받는 현상이 나타나며, 이는 노인차별로 귀결 된다. 노인에 대한 사회적 투자는 최소한에 그치고, 노인문제가 크게 사회문제화 되지 않을 만큼만 도와주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인식이 보편화된다. 그 예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우리나라 고령층 고용률은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다. 노후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노인들이 생계비를 벌기 위해 구직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65~69세 고용률은 41%로 해당연령 인구 10명 중 4명이 취업전선에 내몰리는 것이다. 비교 대상 32개 회원국 평균(19%)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아이슬란드(47%)만이 우리보다 조금 높고, 일본(36%), 미국(30%), 캐나다(23%), 영국(20%), 독일(10%), 이탈리아(8%), 프랑스(5%) 등 G7(주요 7개국)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다. 우리나라 노인의 실질적 은퇴시점은 남성 71세, 여성 70세로 나타났는데, 이는 남성기준으로 비교 가능한 27개국 중 66세에서 71세로 40년 전보다 늦춰진 유일한 국가이다. 나머지 26개국은 모두 은퇴 시점이 앞당겨졌다.

선진 제국은 오래 전부터 연령에 의한 고용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정년제도를 걷어낸 지도 오래 됐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강한 정년제도를 유지하고 있고, 오히려 조기퇴직을 강요하는 관행이 만연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근로자의 실질적 정년은 50대 초·중반에 이루어지고, 더 이상 취업할 수 없는 고령이 될 때까지 10~20년을 결코 자부심을 가질 수 없는 일자리에서 밥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형편이다.

빈곤하지 않은 일반 노인도 경제적 위협을 받고 있다. 초고령 노부모를 모시면서 자녀들을 돌봐야 하는 샌드위치 세대인 현재의 노인들에게 있어서 노령연금의 수혜연령은 점점 높아가고, 연금액의 실질적 가치는 줄어들게 돼있다. 개인저축은 충분치 않으며, 노인의 특성을 고려해서 만든 금융상품도 미미하다.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취업의 기회는 제한돼 있고, 자영업을 하다 노후자금마저 날리기 십상이다. 베이비붐 세대라고 이러한 현상을 비켜갈 수는 없다.

한편,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 몇 년 전에는 독선적이고 바보같은 어떤 정치인이 노인비하 발언을 해 잘 나가던 그의 정치가도에 브레이크가 걸린 적이 있었다. 그는 60~70대 노인은 이제 무대에서 퇴장할 사람들이니까 집에서 쉬고 투표를 안 해도 괜찮다고 했다. 현대판 고려장을 주장하는 듯한 발언으로 정국을 일파만파로 뒤흔들었다. 정치인은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까 때론 막말을 해서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속셈일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러나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운 생각을 할 거라고 기대되는 판사들이 노인차별적인 생각을 한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얼마 전 재판 중 60대 중반의 여성 증인이 진술을 수차례 번복하고 모호하게 대답한다고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막말을 해서 물의를 빚은 40대 부장판사가 있었다. 최근 그에게 견책 징계처분이 내려졌다. 노인을 폄하하고 폭언한 것에 비해 징계 수준이 너무 낮다는 여론이 있었고, 이에 대해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견책이라 해도 해당 내용이 관보에 게재 되고 인사기록에 남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무거운 처벌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판사는 앞으로 노인과 관련된 유사한 사건에서 결코 노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효’ 개념을 교육받지 못한 젊은 세대는 그가 아무리 전문인이라 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전문인이기 때문에 사회에 더 심각한 해악을 준다.

이렇듯 경제적, 사회적으로 노인이 차별 받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개선할 수는 없을까. 떨어진 노인의 위신을 다시 세우고, 노인에게 잠재돼 있는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부여할 제도를 만들 수는 없을까. 노인의 힘이 무서워서라도 노인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서양에서는 매스컴이나 사회기관에서 노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에 시정을 요구하고, 때론 노인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노권운동’이 활발하다. 사회 각 부문에서 노인을 우대하며 인력을 재활용하도록 요구하고, 노인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개발하고, 이런 일에 방해가 되는 세력에 압력을 가한다. 이는 결국 대선과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사람이 노년층이 갖는 가치관에 동조하는 공약을 내걸도록 협상하고, 압력을 행사하며, 모니터링하는 ‘노인시민운동’인 것이다.

지난 번 대선에서 ‘5060세대’의 투표방향이 당선을 좌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투표’는 몇 년에 한 번 의사를 표현하는 ‘조용한 혁명’이라면, ‘노권운동’은 노인의 권익이 침해를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 이를 적극적이고 즉각 시정을 요구하는 ‘시끄러운 혁명’이라 할 수 있다. ‘노권운동’은 결국 노인들이 공통으로 그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정치세력에 표를 던짐으로 노인의 집단적 힘을 과시하는 것이다. 대선에서 본때를 보여줬던 ‘5060’은 이제 그 힘을 좀 더 결집하고 조직해서 ‘노권운동’의 시동을 걸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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