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버지·남편·오빠·동생·사위가 목사에요”
“친정아버지·남편·오빠·동생·사위가 목사에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3.05.03 15:05
  • 호수 3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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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 우리는 목사 가족… 방주교회 강정애 담임목사
▲ 강정애·이광성 목사 부부(사진 왼쪽). 남편은 필리핀에 선교사로 파견 나가 있다. 갈보리교회의 강문호 담임목사(사진 오른쪽)는 강정애 목사의 큰오빠이다.

43세에 신학 공부… 남편도 같은 길 ‘행복’
훗날엔 노인복지 사업에 헌신하고 싶어

▲ 강정애 목사는 시부모 모시는 맏며느리로서 3남매 키우며 평범하게 살다 마흔 넘은 나이에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낙하산하고 주름의 공통점은? 둘 다 펴야 산대요.”
굳은 표정의 신도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서울 가양동에 위치한 방주교회 강정애(60) 담임목사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교를 할 때 이처럼 가벼운 유머로 시작해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꾼다. 강 목사의 설교는 쉽고 재미있어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평을 듣는다. 그건 10여년 목회 경력에서 우러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강 목사 집안은 목회자가 수두룩하다. 강 목사의 친정아버지(강두현·86)가 감리교 목사이다. 50년 목회 생활을 끝으로 은퇴해 고향 충남 안흥에서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강 목사의 친오빠는 기독교대한감리회 갈보리교회 강문호(66)담임목사이다. 원래는 의사가 되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아 신학대에 들어갔다.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서울 수색의 빈민촌에 개척교회를 세웠다. 갈보리교회 전신이다. 문정동에 있다가 최근에 뚝섬으로 옮겼다. 강문호 목사는 평생 하나님의 집 ‘성막’을 연구했다. 성막과 관련한 책을 84권이나 집필했고, 그의 성막론은 20개국에서 사용한다.
강 목사의 남동생(강요한·58)도 목사이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갈보리교회 전도사로 있다가 강원도 발산이란 곳에 개척교회를 세웠고, 그곳에서 안수 받고 목사가 됐다. 현재 갈보리교회 선교사로 필리핀에 파견 나가 있다.
강 목사의 남편 이광성(61)씨도 목사이다. 이 목사는 사업가였다. 의약품 도매를 오래 했다. 아내가 목회자가 되자 찬양이나 승합차 운전 등을 돕기도 했다. 그러다 50대 초반에 야간신학대를 나와 목사가 됐다. 부인과 장인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뒤늦은 출발이지만 신앙 열정만은 대단하다. 7년 전 방주교회 선교사로 필리핀에 파견돼 ‘일로일로방주교회’를 비롯해 15개의 섬에 방주교회를 세웠다. 교회 한 곳 당 신도가 100여명이다. 메디컬미션 등을 통해 원주민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부부는 일 년에 한두 차례 상호 방문한다.
강 목사는 “서로 떨어져 지내지만 부부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길을 가니까 행복하고 즐거워요”라고 말했다.
강 목사는 2녀1남을 두었다. 둘째 사위가 목사이고, 아들이 현재 신학대학에 다니며 찬양사역자가 되려 한다. 이로써 강 목사 집안은 목사 6명, 전도사(강 목사의 여동생)가 1명이다.
“우리 집안에 목사가 많은 건 반평생 아버지가 목회자로서 뿌려놓은 씨앗의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강정애 목사는 43세에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 전에는 시부모를 모시는 맏며느리로서 3남매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였다. 학생 때는 시인을 꿈꾸던 문학소녀였다. 어느 날 ‘너를 연단에서 사용하리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학교 문을 두드렸다. 목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남편은 두 손 들어 환영했다. 6년간 힘겹게 공부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남편의 뒷바라지가 컸다.
초창기엔 집에서 가족끼리 예배를 봤다. 하나둘 신자가 늘어 건물을 구해 나갔다. 가양동에서만 네 번째 이사 끝에 신도 150명을 둔 ‘중급 교회’로 교세를 넓혔다. 개척 당시 어려운 점도 많았다.
“큰오빠(강문호 목사)가 좀 더 큰 장소로 옮기라면서 경제적인 도움을 주겠다고 했지만 받지를 않았어요.”
강 목사의 영향으로 목사가 된 이도 있다. 강 목사는 매주 월요일 주부를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7년째 해오고 있다. 그 가운데 사명감 있는 주부는 목사가 됐고, 일부는 전도사가 됐다. 강 목사는 “만남을 통해 누구에겐가 영향을 주고 좋은 결과를 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들 가족은 1년에 세 차례 처가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강문호 목사의 주도로 이루어지며, 짧게 설교도 한다. 함께 모이면 할 말이 많다. 하는 일이 같아서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가족모임에서 느낄 수 없는 행복감이 있어요. 사람을 살리는데 대한 기쁨 같은 거지요. 힘든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믿음과 말씀을 전할 때 그들이 회복하고 바른 길로 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성취감을 느낍니다. 그런 감격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겁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하니까 특별한 유대감이 형성돼요.”
강 목사는 훗날 노인복지사업을 펼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홍천에 땅도 사두었다. ‘그때 가서 온가족이 힘과 지혜를 모을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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