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란 거울 통해 ‘시어머니’ 된 나를 비춰본다
연극이란 거울 통해 ‘시어머니’ 된 나를 비춰본다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3.07.12 11:33
  • 호수 3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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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 탤런트 겸 방송인 선우용여
▲ 선우용여씨가 서울 성북구 소재 극단 신화의 연습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조준우 기자

연극 ‘고부전쟁’으로 3년 만에 무대 올라
맏며느리와 갈등하는 억척 시어머니 연기
최근에는 노년기 다룬 연극·드라마에 전념


올해 초까지 MBC ‘세바퀴’에서 노년층을 대변하며 재치 있는 입담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탤런트 겸 방송인 선우용여(68)씨가 최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극단 신화의 연습실에서 연기 연습 삼매경에 빠져있다.
뮤지컬 ‘친정엄마’에 이어 3년 만에 연극 ‘고부전쟁’으로 무대에 서기 때문. 8월 25일까지 서울 중구 NH아트홀에서 공연되는 이번 연극에서 선우씨는 맏며느리와 갈등을 일으키는 억척스러운 시어머니 강춘심을 연기한다.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만큼 감회도 남다르다.
“떨려요. 오랜만에 직접 관객들을 만나게 되니 설레고 기쁩니다.”
그 역시 극 중 인물 강춘심처럼 며느리를 두고 있는 시어머니다. 그러나 극 중 강춘심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기는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강춘심은 맏며느리에게 자기 돈은 한 푼도 주지 않으면서 거하게 차례를 지내라고 하는 등 여러 가지로 못되게 굴어요. 이야기의 갈등도 제사상을 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죠. 아무리 시어머니라지만 도가 지나친 행동들은 연기하면서도 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선우씨는 강춘심이 악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힘든 삶을 살다보니 환경에 의해 안하무인의 성격을 갖게 됐다는 것.
“강춘심은 어려서부터 시장 바닥에서 억척스럽게 돈을 번 사람이에요. 이런 힘든 상황 때문에 다른 사람들, 심지어 며느리도 막 대하는 거죠. 공감할 순 없어도, 시각에 따라서는 연민이 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시부모, 특히 시어머니인 어르신들이 이 작품을 꼭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연극은 어르신들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일종의 거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 잘못은 보기 어렵잖아요. 이 연극을 보면서 자신의 부정하고 싶은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극 중 인물을 자신과 비교해보면서 과연 나는 어떤 시어머니 혹은 시아버지였는지 돌이켜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평소 선우씨는 이상적인 고부 관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그는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기대하거나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부모에게 진 빚은 자식들에게 갚은 걸로 끝내야지, 자식들에게 다시 받을 생각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또, 우리 노인들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진 움직여서 돈을 벌어야죠. 도움을 받더라도 열심히 일한 뒤에 정말 몸을 움직일 수 없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받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때는 며느리의 도움이 필요하겠죠. 마찬가지로 며느리도 나이가 들면 자식의 도움을 받게 될 거고요. 이처럼 삶이라는 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게 돼있는 것 같아요.”
물론 며느리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는 단호하게 꾸짖어야 한다. 그러나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화를 내거나 갈등을 일으켜선 안 된다는 것.
“혼을 내더라도 내 자식에게 하듯이 좋은 마음으로 해야죠. 또, 시어머니도 사람이니까 실수를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아무리 며느리가 아랫사람이지만 미안하다고 사과할 줄도 알아야죠.”
선우씨는 올해 초 MBC 예능프로그램 ‘세바퀴’에서 하차했다. 4년 동안 고정 패널로 출연해온 만큼 애정이 각별했다.
“4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잖아요. 애착이 깊었죠. 할 수 있다면 계속 하고 싶었지만, 세월을 거스를 순 없잖아요. 저도 이제 나이를 먹었고, ‘어제’가 곧 ‘오늘’은 아니니까요. 요즘에는 연극 연습을 하고 있고, 8월 방영 예정인 JTBC 일일연속극 ‘더 이상은 못 참아’ 촬영도 시작해서 연기에 전념하고 있어요.”
새롭게 시작하는 드라마 역시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나이 일흔이 될 때까지 남편이 하라는 대로 하며 묵묵히 참고 살던 아내가 막내딸을 시집보내면서 반란을 일으키는 내용이다. 연극 ‘고부전쟁’이 고부 갈등을 그린다면, 이 드라마는 노년기의 부부 갈등을 다룰 예정이다.
선우씨는 그간 연기자와 방송인 사이에서 경계를 두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해왔다. 그가 느끼는 연기자와 방송인, 각각의 매력은 무엇일까.
“우선 연기든 예능이든 기본적으로 순수하고 솔직한 면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봐요. 특히 개그맨이나 예능인들에게서 순수한 면을 많이 봅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을 굉장히 좋아해요. 예능은 솔직하고 톡톡 튀는 재미가 있어요.”
연기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드라마나 연극을 통해서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삶을 추적하잖아요. 엄마로 예를 들어볼게요. 세상에는 엄마도 다양한 엄마가 있어요. 엄마 역할을 연기하더라도 작품마다 인물이 모두 달라요. 그래서 엄마라는 한 가지 역할에 대해서도 영원히 물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 같아요. 대부분 엄마라고 하면 어떤 상을 그리지만, 그 모습은 모두에게 다르니까요. 말하자면, 무한한 수의 어머니상이 있는 거죠. 연기를 할 때는 수많은 엄마를 연기해볼 수 있으니 좋아요.”
특히 연극에서는 같은 역할을 연기할 지라도 그날 연기자의 기분이나 상태에 따라 매일 캐릭터가 조금씩 다르게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기계처럼 딱딱 떨어지지 않잖아요. 그래서 많은 에너지가 들더라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내 안에 있는 것들을, 그 역할에 가장 가깝게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어느 분야 못지않게 경쟁이 치열한 연예계지만, 짧은 시간 동안 말 그대로 ‘반짝’하고 사라지는 스타들은 많다. 그러나 선우씨처럼 꾸준하게 사랑받으며, 특히 노년기에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연예인은 흔치 않다. 비결은 무엇일까.
“저보다 연기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 연예인들이 많잖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거 보면 ‘팔자인가 보다’하고 생각해요.”
그에게 거창한 꿈은 없다. 그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성실히 하며, 꾸준히 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그저 지나간 일들은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자식들에게 섭섭한 것도, 아쉬운 일도 있겠지만 다 잊고 앞으로 다가올 일을 생각하는 거예요. 또, 지금 자신 곁에 있는 사람에게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았으면 좋겠어요. 나이 들수록 이런 것들을 스스로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아야 정말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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