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운전자 급증… 치매 운전 막을 장치 없다
고령 운전자 급증… 치매 운전 막을 장치 없다
  • 유은영 기자
  • 승인 2013.11.08 10:51
  • 호수 3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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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운전 사고 100건당 5명 사망… 일반 치사율의 두 배

신체기능 쇠퇴가 원인… 운전 지속여부 기준 마련해야­
일본 70세 이상 인지기능 검사… 호주 85세 이상엔 규제


지난 9월 70대 노인이 운전하던 차가 인도를 걷던 30대 남성에게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인 운전자는 속도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밟아 사고가 난 것으로 조사됐다.
어르신은 “생각은 다 있는데 손이 안 따라줘서 사고를 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최근 10년새 65세 이상 노인 운전자가 늘면서 노인 운전 사고도 덩달아 늘고 있다. 노인 운전 사고가 증가하는 이유는 노인 운전면허 소지자 증가와 함께 나이가 들수록 운전에 필수적인 감각과 인지능력이 쇠퇴하기 때문이다.
실제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노인 운전자 전체의 21.3%가 ‘운전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부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경찰이 2010년 노인 운전자가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택시요금 등 대중교통 할인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인권침해라는 반발에 밀려 폐기됐다.
우리나라는 여타 선진국보다 고령화가 빨라 2020년에는 고령 운전자 비율이 약 34%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따라 도로 표지 대형화와 야간 조명시설 확충 등 제도적인 뒷받침과 함께 인지기능 자가 체크로 운전을 그만둘 시점을 알아보는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대두되고 있다.

10명 중 2명이 면허 소지
고령화 진전과 함께 노인 운전면허 소지자가 늘면서 노인이 내는 교통사고도 증가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01년 이후 최근까지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는 3% 늘어난 반면 노인 운전면허 소지자는 15%나 급증했다.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자는 598만명으로 고령자 10명 중 2명 이상이 운전면허를 소지했다.
노인 운전자가 증가하면서 노인이 내는 교통사고도 증가하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수현 의원(민주당)이 최근 5년간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고령자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008년 1만155건, 2009년 1만1998건, 2010년 1만2623건, 2011년 1만3596건, 2012년 1만5190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치사율(교통사고 100건당 사망자수)도 비노인 교통사고 치사율(2.5명)보다 2배(5명) 높다. 노인 운전자가 내는 사망 교통사고율은 2001년 3%에서 2011년 12%로 크게 늘었다.
이처럼 노인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자주 내는 까닭은 나이에 따른 신체능력 저하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복지부 조사에서 노인 운전자의 21%가 ‘운전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야간 운전(52%)과 시야확보(25%)였다.

노인성 안과 질환 탓 시야확보 어려워
나이가 들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홍채의 기능이 떨어진다. 야간 운전 시에는 반대편에서 오는 차의 전조등으로 인해 눈이 부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노인성 안과 질환인 백내장, 녹내장, 황반변성증도 노인 운전 사고를 부추긴다. 뇌졸중을 앓아 시각인지능력이 손상된 노인이 운전을 할 때에도 사고 위험은 증가한다.
목, 발, 손 등의 관절염도 운전에 지장을 준다. 시야 확보를 위해 고개를 돌리거나 가속 페달에서 브레이크로 발을 옮길 때, 또 히터나 에어컨을 틀 때 등 여타 자동차 장치를 조작하는 데 지장을 줄 수 있다.
특히 치매 운전자들은 자신의 인지능력 저하를 알지 못해 사고의 위험성이 더욱 증가한다. 치매 초기 증상은 모호한 경우가 많고 기억장애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진행하면 기억력 감퇴와 더불어 판단력 장애, 언어 장애, 계산력 장애 등 다양한 인지 기능의 장애가 생긴다. 그러나 치매 노인이 운전을 그만둘 시점을 알리는 가이드라인은 전무한 실정이다.

일본, 면허 갱신시 인지기능 검사 의무화

▲ 지난해 98세의 나이로 운전면허를 획득한 박기준(99) 어르신이 공주경찰서 ‘착한운전 마일리지제’ 제1호로 서약한 뒤 공주경찰서 현관 앞에서 김관태 서장(오른쪽)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착한 운전(무사고·무위반)’ 서약을 한 운전자가 이를 1년간 실천하면 10점의 운전면허 특혜점수를 받는다. 사진=연합뉴스
상황이 이런데도 노인 운전자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노인 운전자의 면허 갱신 시기를 5년으로 단축하고 적성검사를 의무화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에 그치고 있다. 최근 들어 매달 노인 운전 무료 교육을 실시하고 교육에 참여하면 2년간 자동차 보험료를 5% 깎아주는 것이 대책이라면 대책이다.
반면 초고령 사회인 일본은 고령 운전자에 대한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일본은 70세 이상 운전자가 면허를 갱신하려면 의무적으로 안전운전 강의를 들어야 하고 75세 이상은 기억력, 판단력 등 인지기능 검사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차량에 고령 운전자 표시로 네잎 클로버 마크를 붙여야 하고 이 스티커가 붙은 차량을 추월하거나 위협하면 벌금 50만엔과 함께 벌점을 준다.
보험사들은 노인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2011년부터 매해 노인 운전자 보험료를 인상해 스스로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노인들도 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노인 운전자가 운전면허를 내놓으면 백화점 상품권이나 지하철 무료 패스 같은 선물을 준다.
우리나라도 일부 지자체가 노인 운전자 스티커를 배부하고 있지만 다른 운전자에게 주의를 주는 수준에 그칠 뿐이다.
미국은 치매 운전자들에 대한 규제를 2000년부터 시작했다. 영국은 치매 진단을 받은 사실을 기관에 알리지 않고 계속 운전을 하면 벌금형을 받는다. 호주는 85세 이상 노인의 경우 주거지 반경 10km 이내로 운전을 제한하는 대책을 내놨다.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보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 보험연구기관과 학계에서는 초고령 사회 진입 이전에 안전장치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교통안전 교육 의무화와 함께 고령 운전자를 배려한 도로표지 대형화 등 교통안전 시설물의 개선, 야간 운전 환경 개선을 위한 도로조명 증설 등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대 의대 이호원 교수는 “도로교통법상 의사 진단을 받은 정신질환자, 간질병자, 일부 장애인, 마약중독자 등은 운전면허 취소 대상이 되지만 치매는 이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며 노인 운전 적합여부를 선별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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