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사진·서예로 승화된 ‘인생의 사계’에 감동
회화·사진·서예로 승화된 ‘인생의 사계’에 감동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3.11.15 10:42
  • 호수 3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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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미술관서 어르신들의 작품 전시 열려
▲ 어르신들이 탑골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번 전시 기간 동안에는 2000여 명의 어르신 및 시민들이 미술관을 찾았다.사진=조준우 기자

유화부터 디자인‧서예까지 170여점 공개


서울 종로구 탑골미술관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주제로, 노년기에 들어서 예술 활동을 시작한 어르신들의 다양한 작품이 공개된 것. 전시가 열린 약 한 달 동안 2000여 명의 어르신 및 시민들이 방문해 작품을 감상했다.
전시회는 10월 10~20일에는 봄, 10월 24일~11월 3일에는 여름, 11월 7~17일에는 가을의 콘셉트로 각각 꾸며졌다. 봄 섹션에는 유화 30여점, 여름 섹션에는 사진‧아트북‧디자인‧연필소묘 80여점, 가을 섹션에는 서예 60여점이 공개됐다.
봄 섹션은 어르신들의 작품을 통해 인생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앞날을 기대하는 설렘을, 여름 섹션은 함께 뛰어노는 분주한 여름날의 느낌을, 가을 섹션은 자신의 속도에 맞게 천천히 걷는 걸음의 정서를 살려 기획됐다.
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단순히 어르신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노년기에 시작한 예술 활동을 통해 어르신이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과 이야기를 담았다”며 “작품 그 자체보다는 어르신들이 작품을 만들면서 내면의 성숙을 경험하고, 예술가로 성장하는 열정과 이야기를 선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가 가장 큰 의미로 다가왔을 이들은 바로 작품을 출품한 어르신일 것. 어르신들은 어떤 계기로 예술 활동을 시작하게 됐을까.

▲ 김분자 어르신의 디자인 작품 ‘고민’.

김군자(여‧70) 어르신은 건강 증진을 위해 금천구 복지관에서 태권무 수업을 듣다가 우연히 서울노인복지센터를 방문했다. 당시 디자인 교실을 알게 됐고, 지난 두 달간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첫 작품을 전시하는 영광을 앉게 됐다.
“우리 세대에겐 ‘디자인’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잖아요? 사실 디자인이 뭔지 궁금했어요. 막연히 보면 모든 사물에는 디자인이라는 게 있는데, 대체 무얼 배우는 걸까 호기심이 생긴 거죠.”
어르신이 이번 전시에 공개한 작품의 제목은 ‘고민’이다. 어르신의 이름에 들어가는 ‘ㄱ’(기역)과 ‘ㄴ’(니은)을 조합하다보니 ‘고민’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것. 이에 이름의 나머지 자음과 모음을 이용해 고민하고 있는 뇌 모습을 형상화했다. 모두 어르신이 직접 낸 아이디어다.
통영 연화도와 마라도의 멋진 자연 풍경을 그린 유화 작품을 출품한 차용제(87) 어르신은 유화를 배운 지 2년이 됐다. 다른 어르신을 따라 풍수지리나 논어 수업을 들어봤지만 흥미가 생기지 않아 오래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다른 수업의 인원이 모두 마감됐는데, 소묘반만 한 자리가 남아 미술을 시작하게 됐다. 차 어르신과 미술의 첫 만남이었다. 6개월 뒤에는 본격적으로 유화를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매력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저는 예술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았어요. 사실 배우기 전에는 유화라는 게 어떤 것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그저 시키는 대로 칠했죠. 그렇게 배우면서 실력이 눈에 띄게 느는데 그게 무척 기쁜 거예요. 현재 심정으로는 여생을 그림 그리며 보내고 싶어요.”
한 평생 자신만의 천직을 찾지 못한 채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며 방황했던 그이기에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미술을 시작하지 않은 것이 후회도 된다. 50~60대에만 그림을 시작했어도 지금쯤은 전문 화가처럼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 때문이다.
심광섭(여‧67) 어르신은 자신의 노년기 일상을 담은 아트북을 만들었다. ‘뭔가 조금 더 재밌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 아트북 교실을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 어르신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간의 일상을 한 편의 동화책처럼 제작했다.
“월요일에는 복지관에 가고, 화요일에는 봉사를 해요. 토요일에는 장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을 잔뜩 사다가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먹으면서 쉬지요. 이런 것들을 그림으로 재밌게 표현했어요.”
이처럼 전시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전시 또는 작품 그 자체보다 이를 만들고 선보이기까지 자신의 삶에 나타난 변화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김군자 어르신은 “노년기에 시작한 예술 활동,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에게 다시 묻게 됐다.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지?’하고. 몸이 안 좋았는데, 최근에는 건강도 좋아졌다. 앞으로도 예술 활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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