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일자리 대책 목적부터 규정해야
노인 일자리 대책 목적부터 규정해야
  • 유은영 기자
  • 승인 2013.11.29 14:25
  • 호수 3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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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노인취업훈련센터 고령자취업 포럼서 주장
▲ 70~80대 어르신들이 한 채용박람회에 내걸린 구인 공고를 들여다 보고 있다.

참여 노인 84%가 경제 보탬 원해… 일자리는 봉사형에 치중
전담부서 없이 직원 한 명이 154명 담당, 체계화부터 서둘러야


우리나라가 OECD 노인 빈곤국 1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부에서 내놓는 노인 일자리가 봉사적 성격에 치중된 탓으로 드러났다.
서울시노인취업훈련센터는 11월 21일 고령자 취업활성화를 위한 노인복지실천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열었다. 이날 주제강연에 나선 목원대 권중돈 교수는 “노인들이 경제적 도움이 필요해서 일자리 사업에 참여중인 것으로 조사됐는데 현재 정책은 낮은 급여 수준의 사회공헌형 일자리 비중이 커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지난 5월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노인의 특성을 조사한 결과 84.8%가 참여 동기로 경제적인 이유를 들었다. 반면 사회참여(5.7%)와 자기발전(3.7%)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매우 적었다. 지자체와 복지관, 시 재단 등을 통해 운영되고 있는 노인 일자리 사업은 월생계비(159만원)는 물론 참여노인들의 희망급여(45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공익형에 치중돼 있다. 게다가 2010년을 기점으로 은퇴한 베이비부머의 노동시장 재진입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고령자의 필요를 빗겨간 노인 일자리 대책은 노인 빈곤 가구를 계속 양산해 낼 전망이다.
이렇듯 정책이 현장의 요구에 반하는 데에는 우선 정책목표가 모호하다는 점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노인 일자리 사업의 목적은 현재 노인의 소득보완과 노동시장 재진입, 사회참여 지원 등 여러 가지가 혼합돼 있다. 정책목표가 모호하다보니 사업수행기관은 각자 기관별 실정에 맞춰 사업량과 예산을 집행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는 고학력 베이비부머에 적합한 경력 연장 개념의 좋은 일자리보다 단순노무직종이 양산되는 이유가 된다.
권 교수는 “사업수행기관이 노인 일자리사업의 목표를 소득창출과 사회참여 지원 중 어디에 둘 것인가부터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수행인력의 업무환경 개선도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각 수행기관은 일자리사업 전담부서가 없는 상태에서 기존 인력이 고유업무와 일자리 업무를 병행하는 형태로, 1인당 154명을 담당하는 과중한 업무에 연장근무와 낮은 보수 등 열악한 근무환경에 노출돼 있었다. 이는 수행기관에 지원되는 사업운영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자리사업 지원예산의 대부분이 급여성 지출이고 사업운영 투입비는 8%에 불과하다. 결국 인력과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채 양적 확대에만 치중하는 정책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일자리 대책이 노인들의 필요를 맞추지 못하다보니 정책사업에도 고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난 5년간 일자리사업 참여 노인의 연령은 64세 이하가 감소하고 75~79세 이상의 증가폭이 두드러졌다. 비교적 건강한 64세 이하의 노인들이 생계를 위해 소득이 더 많은 민간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권 교수는 “일자리 사업계획이 일자리 공급량과 예산계획에 머물기보다 기관별 지역별 특수성에 맞는 일자리 개발과 그에 맞춘 고령자 역량 강화 프로그램 운영, 고령자를 고용할 수요처 발굴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를 위해 일자리 사업의 1차 초점을 경력연장을 위한 취업알선에 두고 이것이 어려운 사람들은 단순노무직에 집중돼 있는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권 교수의 지적대로 현재 사업량 수행에 불과한 노인일자리 사업이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일자리 전담부서 설치와 적정 인력 배치, 실무자의 역량교육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 노동력 편견 해소 뒤따라야
양질의 노인 일자리 개발에는 고령 노동력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가 요구된다. 기업들은 대체로 고령자를 생산성이 낮고, 재해나 사고를 일으키기 쉽고 창의성이 부족한데 반해 급여는 많이 가져가는 비합리적인 노동력으로 인식한다.
이같은 편견을 해소하려면 고령 노동력의 강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권 교수는 “고령자는 일에 대한 자긍심이 높고, 특정한 일에서는 젊은이보다 생산성이 높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양심적인 노동자”라고 강조한다.
지난 6월 제20차 세계노년학·노인의학대회(IAGG 2013)에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세부행사로 주최한 한·미·영 3국 좌담회에서도 고령 노동력에 대한 편견 문제가 심도깊게 논의된 바 있다. 마크 프레드만 미국 앙코르 대표는 “지금 고령자들의 취업은 과거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할 때와 비슷하다”며 “당시에는 여성들의 사회진출에 대해 우려의 시선과 달리 지금 여성들은 엄청난 생산성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인들도 여러 장애요인들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몫을 톡톡히 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평균 은퇴 연령은 53세로 주요국에 비해 7~10년 이상 빠르다.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따라 조기 퇴직이 증가한 탓이다. 반면 평균 수명은 81세를 넘어서 퇴직 이후 약 30년 동안의 소득 설계가 불투명하다. 정부가 고용정책과 고령자 복지정책을 연결시켜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은퇴 이후 고령자는 확실한 생계대책 없이 노동시장의 주변부를 맴돌게 된다.
그러나 고용을 보장하지 않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 역시 정부 정책인 점을 감안하면 노인 일자리 대책의 체계화와 경력 연장을 고려한 양질의 노인 일자리 개발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2004년 개소한 서울노인복지센터(관장 희유스님) 부설 서울시어르신취업훈련센터는 고령 구직자들이 단순노무직종으로 내몰리는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 도슨트, 바리스타, 문화해설사 등 고령자 역량개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관장 희유 스님은 이날 포럼에 앞서 “고령자들의 일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노인 복지 실천기관들의 역할과 방향을 모색해 고령자 취업이라는 과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고자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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