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주제에 감성적 문체 유럽서 통해
보편적 주제에 감성적 문체 유럽서 통해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4.04.18 14:04
  • 호수 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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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마당에서 나온 암탉’과‘별을 스치는 바람’

황선미, 영국서 한국 작가 최초 베스트셀러 1위
‘마당…’철학적 질문, 탄탄한 구성으로 풀어내


영국 런던에서 한국 작가들이 활약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 4월의 봄바람을 타고 전해졌다. 4월 8~10일 런던에서 열린 제43회 런던도서전을 계기로 소설가 황석영, 이문열, 신경숙 등이 현지에 알려지면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것이다.
특히 황선미, 이정명 작가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국내에서는 밀리언셀러이자 동화책으로 분류되는 ‘마당을 나온 암탉’을 쓴 황선미 작가는 ‘오늘의 작가’로 선정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 작품은 런던의 대형서점 포일즈 워털루에서 한국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별을 스치는 바람’의 이정명 작가도 영문판 출간 일주일 만에 대형서점 워터스톤즈의 런던 트라팔가 광장 매장에서 ‘소설 베스트’로 선정됐다.
세계 출판시장에서 한국 문학은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은 수준이지만, 이번 성과는 분명 고무적이다.
이쯤에서 파란 눈의 이방인들에게 찬사를 받은 황선미, 이정명 작가의 작품이 궁금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간 두 소설은 한국문학의 불모지인 어린이 동화, 대중소설로 분류돼왔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경우에는 소설보다는 2011년 제작된 애니메이션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별을 스치는 바람’은 2012년 한국 문학의 전반적인 침체기 속에서 자존심을 지켜낸 정도다. 때문에 세계적 성과에 비해 국내 독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알을 품어 병아리의 탄생을 보겠다는 소망을 간직하고 양계장을 나온 암탉 ‘잎싹’의 이야기다. ‘잎싹’은 자신이 키워 자식이나 다름없는 아기 청둥오리를 위해 족제비와 용감하게 맞서 싸운다. 우정과 자유, 삶을 소중히 여긴 그는 죽음조차 자연의 순리로 담담히 받아들여 감동을 준다.
양계장에 갇혀 배부르게 먹고 품지도 못할 알을 낳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난용종 암탉, 한쪽 날개를 다쳤지만 자신의 본성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나그네 청둥오리,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수탉, 자신의 본성을 망각하고 안락한 삶에 안주하는 집오리 떼, 기회주의자의 전형인 문지기 개 등은 인간의 다양한 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우리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다소 어렵고 무거울 수 있는 주제지만, 박진감 넘치는 탄탄한 구성과 풍부한 상징성, 독특한 등장인물의 창조, 산뜻하고 감성적인 문체로 문학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평가다.
황 작가는 “나는 어린이를 위해 글을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쓴다. 어린이도 어떤 방법으로든 죽음을 경험하고 슬픔을 느끼며 성장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그 과정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인 윤동주를 모티브로 쓰인 ‘별을 스치는 바람’은 1944년 겨울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를 배경으로 하는 장편소설이다. 형무소의 중앙복도에서는 냉혹한 일본인 간수이자 검열관의 사체가 발견되고, 유일한 단서는 그의 간수복 윗주머니에 있던 수수께끼의 시 한 편뿐이다. 어머니의 작은 헌책방 일을 도우며 문학의 꿈을 키우다 강제 징집된 어린 간수병 ‘나’는 떠밀리듯 사건을 떠맡고 용의자인 젊은 조선 죄수 645번 윤동주를 조사한다. 그러나 사건을 조사할수록 단순한 살인사건은 죄수들의 대규모 탈출기도와 지하에 감춰진 또 다른 미궁의 사건으로 번져간다.
이 과정에서 열혈 문학도이면서 감수성 예민한 햄릿형 주인공인 ‘나’는 누가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 전쟁을 싫어한다는 사람들이 왜 참혹한 대량학살을 막을 수 없는지, 거대한 야만성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죄의식 속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문학과 음악과 같은 예술은 과연 인간의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지 등의 질문과 끊임없이 싸운다.
존재의 가면 속에 숨겨진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깊은 성찰, 생동감 넘치는 서사, 감각적 묘사, 탁월한 구성 능력은 독자로 하여금 때로는 탈출을 꿈꾸는 죄수가 되게 하고, 때로는 죄수를 연민하는 간수가 되게 하고, 때로는 살인의 수수께끼를 쫓는 탐정이 되게 한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이 책에 대해 “시와 책, 읽기의 힘을 찬양하고, 아무리 가혹한 시대도 변화시키고 치유할 수 있다는 ‘육감’(Sixth Sense)을 선사하는 스토리”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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