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만들고 회원들 점심식사 차려주고…펄펄 나는 100세 경로당 회장
빵 만들고 회원들 점심식사 차려주고…펄펄 나는 100세 경로당 회장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05.02 10:58
  • 호수 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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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판남 강남구 재너머경로당 회장
▲ 최판남 회장은 100세의 나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지회 행사 참여는 물론 회원들 식사까지 일일이 챙겨 억척 회장으로 통한다. 아래는 경로당 전경.

제빵사 보조로 일해 하루 2만2000원 벌어
지회 행사에도 한 번 안 빠지는 억척 회장님
“회원들과 얘기하며 어울릴 때 가장 행복”


“팥을 좀 더 넣어주세요.”
40대의 여성 제빵사가 밀가루 반죽으로 단팥빵을 만드는 최판남(100) 재너머경로당 회장에게 하는 말이다. 4월 말 어느 날,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재너머경로당 2층, 향기로운 빵 냄새 가득한 속에서 최 회장 등 어르신들 3명이 부지런히 빵을 만들고 있다.
“제빵사 보조역할이지요. 밀가루에 버터 넣고 달걀 깨어 넣고 반죽을 떼어내 빵 모양도 만들어요. 마지막으로 비닐봉지 포장하고 상표 붙이면 끝이에요.”
최 회장의 말이다. 최 회장과 어르신들은 발효기, 반죽기, 오븐기 등으로 가득 찬 5평 공간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루 100여개의 빵을 만들고 일당 2만2000원을 받는다. 7년째 해오며, 빵 종류는 단팥빵부터 롤 케이크까지 다양하다. 제빵은 사단법인 ‘우리복지’가 강남구의 수탁을 받아 경로당활성화 사업의 하나로 시행하는 사업이다. 빵은 주민센터 등지에서 일반인에게 팔린다.
최판남 회장은 점심식사 때가 되자 밀가루가 범벅이 된 앞치마를 벗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사를 준비해주는 자원봉사자를 도와 재빨리 밥상을 차리고 회원들을 불렀다. 이곳 경로당 회원은 30여명이지만 매일 나와 식사하는 이들은 20명 내외다. 92세 3명, 91세 2명, 그밖에 76~89세이다.
최 회장은 전자밥통에서 밥을 퍼 밥그릇에 담아 식탁에 내놓기도 하고 컵에 물을 따라 놓기도 했다. 100세의 나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몸놀림이 빠르다. 후다닥 밥 한 공기를 비운 최 회장은 봉지커피를 타 회원들에게 전해주었다. 최 회장은 잠시도 쉬지 않고 회원들의 시중을 들어주었다. 식사 후 최 회장은 다시 2층으로 올라가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최 회장은 보청기도 안경도 끼지 않는다. 보고 듣는 게 정상이다. 다만 틀니만 꼈을 뿐이다. 걸을 때 발뒤축에서 콩콩 소리가 날 정도로 발걸음이 탄력 있고 힘차다.
재너머경로당 김옥인(79) 총무는 “작년까지만 해도 밥을 수북이 한 사발 드셨지만 허리통증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난 후에는 전처럼 많이 드시지 못한다. 그렇지만 보시는 것처럼 아주 정정하시다”고 거들었다.
김 총무에 따르면 최 회장의 삶은 아프려 해도 아플 시간이 없었다.
최 회장은 경남 의령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들을 원했던 아버지는 딸이 태어나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최 회장은 “(아버지는) 막 태어난 나를 아예 방구석으로 밀어놓았고, 이름도 안 지어줘 동네사람이 내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기억했다.
최 회장은 일제강점기 과자공장을 운영하는 남편과 사이에 8남매를 두었다. 해방 후 대구에서 제과점을 하기도 했다. 자식들을 모두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보내느라 아플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양계장을 하던 시절이 가장 힘들었어요. 그땐 냉장고가 없어 달걀을 많이 낳으면 땅에 묻을 수밖에 없었지요, 사료 값은 들어가는데 달걀은 팔리지 않아 너무나 힘들었어요.”
최 회장의 장남은 현대그룹을 다니다 정년퇴직 했고, 둘째아들은 도로공사에 다니며, 셋째아들은 의사이다. 딸들도 여유 있게 산다. 최 회장은 40여년 전 남편을 여의고 홀몸으로 남은 두 명의 자녀를 출가시켰다.
최 회장은 2009년부터 재너머경로당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년에 연임됐다. 대한노인회 강남지회 161곳 경로당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회장이며, 가장 부지런한 회장이기도 하다. 재너머경로당은 2006년 12월에 문을 열었다. 초기엔 청담1동 주민이 이용하다 최근에 청담2동과 합쳤다. 주변 환경도 좋다. 강남구청이 주택가의 2층 양옥을 구입해 경로당으로 내놓았다. 경로당은 아래층만 사용하고 있다. 대지 114평에 방이 3개이다. 마당에는 감나무·소나무·사철나무 등 수목이 우거져 있다. 잡목이 너무 많아 구청 측에 정리를 부탁할 정도이다.
최 회장은 “고층아파트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지만 일단 경로당에 들어서면 한적한 별장에 들어앉은 느낌이다”며 “우리처럼 환경이 좋은 경로당도 드물 것이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의 경로당 생활에 대한 만족도도 높다. 매달 사회복지법인 ‘영산’에서 미용봉사를 나오고, 노래선생이 방문해 가요와 민요를 가르쳐 주며, 강남구 해병전우회에서 생일잔치를 해주고, 건강보험공단에서 요가선생이 나와 요가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김옥인 총무는 “최 회장님은 시장에서 찬거리도 사오고, 지회 행사에 꼬박꼬박 참여하시고, 그 연세에도 회원들이 불만을 갖지 않도록 부지런히 움직이신다”며 “주위에서 우리 경로당을 다들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대한노인회 강남구지회 관계자는 “재너머경로당은 우리 지회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경로당 중 한 곳”이라며 “어르신들이 아침부터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시고, 가요와 민요 부르기 등 프로그램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신다”고 말했다.
경로당에 나와 회원들과 어울리며 얘기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최판남 회장에게 ‘경로당에 할아버지가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 묻자 “아이고, 술·담배 냄새 나는 양반들 반갑지 않아”라며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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