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노인들은 더 취약하다
의료사고, 노인들은 더 취약하다
  • 한성원 기자
  • 승인 2014.11.28 11:13
  • 호수 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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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보상받기 힘들어… 사고 의심되면 진료기록부 확보를
▲ 가수 신해철의 죽음으로 불거진 의료사고 논란이 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의료서비스를 가장 많이 받는 노인들 역시 의료사고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사진은 지난 4월 성형수술 관련 의료사고에 대해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임원들이 사죄하고 있는 모습.

입원시 감염 안 되게 조심… 수술 전에 후유증 등 꼭 물어야
의료기관도 ‘쉬쉬’만 하지 말고 발생원인 등 공유할 필요

이옥순(65세, 여) 씨는 30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종교 활동을 통해 사회봉사에 적극 나서는 등 항상 긍정적인 생활을 해왔다. 그 덕분인지 건강에도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2012년 4월 6일 서울 모 병원에서 받은 신장이식 수술이 이 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수술 후 오른쪽 다리에서 이상 징후를 느낀 것. 마치 송곳으로 찔러대는 듯 아팠다. 진통제를 먹어도 그때뿐 고통이 가시질 않았다. 지금은 다리를 의지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다. 정확한 병명은 ‘대퇴부신경손상마비’. 이 씨로서는 신장이식 수술에 따른 의료과실 외에는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병원 측에서는 ‘우린 잘못 없다’는 답변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등의 문을 두드려봤지만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았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아파트 단지 내 소문난 웃음꾼이었던 이 씨. 병원 측이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기만 바랄 뿐이라는 이 씨의 하소연은 다리의 통증보다 더한 아픔을 전하고 있다.
가수 신해철의 죽음으로 불거진 의료사고 논란이 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각종 수술을 받게 되는 노인들은 의료사고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지난 2012년 4월부터 올해 3월말까지 접수된 의료사고 상담은 7만3000여 건에 이른다. 이중 2287건은 조정중재 신청이 이뤄졌다. 또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의료사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은 1100건에 달한다.
문제는 이처럼 의료사고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보상이나 조정·중재 등이 이뤄지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경우 조정 개시 후 중재가 이뤄진 사건이 2012년 192건 중 1건, 2013년 551건 중 1건, 2014년 637건 중 1건에 그쳤다. 지난 3년간 조정 개시된 1380건 중 단 3건만이 처리된 셈이다. 한국소비자원 역시 의료분쟁상담 3만여 건 중 피해구제는 981건, 분쟁조정은 617건에 머물렀다.
의료사고 소송 결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지난해 의료사고 민사소송에서 피해자 완전승소는 전체 소송 건수의 1%도 되지 않는 6건(0.54%)에 불과했다. 일부승소 역시 26% 수준으로 4건 중 1건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기 어려운 원인으로 입증책임이 환자에게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현실적으로 의료과실을 인정하는 병원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 누구에게 발생할지 모르는 의료사고로부터 최대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최선은 의료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환자나 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해당 병원에서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가 가능한지, 병원의 평판은 어떤지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관계자는 “의료사고에 있어서 환자는 지극히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며 “그나마 환자가 할 수 있는 의료사고 예방법은 입원 시 감염 등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전수칙을 잘 지키는 것과 처치나 수술과정에서 환자가 뒤바뀌는 일이 없도록 의료진이 환자를 확인하는 과정에 앞서 환자 스스로 본인임을 확인하는 절차를 요구하는 정도”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의료사고 전문가들은 “환자는 진료 시 의사에게 자신의 질병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며 “그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적합한 치료방법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치료할 것이며 치료방법에 따른 후유증과 예후는 어떠한지 등을 물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의료사고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병원 측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관계자는 “의료사고의 상당수는 예방 가능한 것”이라며 “의료사고 발생 시 인지도 하락 등을 우려해 사고를 숨기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사고를 분석하고 유형별로 분류해 모든 의료기관, 의료인들이 학습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함으로써 다른 의료기관에서 똑같은 의료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단 의료사고가 의심 되면 병원 진료기록부터 살펴봐야 한다.
김지숙 마산대 보건행정과 교수는 “의료사고와 관련한 분쟁이 발생하면 진료기록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며 “처치와 수술기록 뿐만 아니라 투약기록과 검사 결과, 간호일지까지 확보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의료인은 정직하게 진료기록을 작성하고 환자나 환자 가족의 요구가 있는 경우 이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의료인이 의료소송 과정에서 자신의 과실을 감추기 위해 진료기록을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고의로 수정하는 등의 행동을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뿐만 아니라 판결 시 의료인 측의 과실을 추정하는 자료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다.
변호사 선임도 중요하다. 요즘에는 사시 출신뿐만 아니라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소송 결과에는 상관없이 은근히 소송을 부추기는 경우도 많아 주의가 요구된다.
일각에서는 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가 의료인의 잘못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인이 본인의 의료행위에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경우 병원 측이 조정절차에 응하지 않으면 신청 자체가 각하되는 문제도 있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의료기관에 보고의무가 없다보니 어려운 점이 있다”며 “종합병원급 이상에는 의료사고 예방을 독려하는 한편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접수된 사례를 분석해 의료사고로부터 환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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