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단장하기
뒷모습 단장하기
  • 신은경
  • 승인 2014.11.28 13:49
  • 호수 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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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두 개의 거울 위치가 절묘하게 자리 잡는 바람에 나의 뒷모습을 똑똑하게 보게 된 일이 있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들여다보는 화장대 거울 뒤로 옷장에 붙은 거울이 절묘하게 자리를 잡는 바람에 나의 뒷모습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보는 내 뒷모습이 참으로 낯설어 보였다. 볼품없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앞모습을 꽃단장 하고 나서도 어쩔 수 없이 볼품없는 뒷모습을 보이는 나이가 되었는데, 아무 치장도 하지 않는 집에서의 나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집에서는 자유로워야 한다는 이유로 그나마 화장도, 머리 손질도 없이 옷까지도 펑퍼짐하고 허름하게 입고 살고 있으니 오죽했으랴 싶다.
순간 남편에게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장 볼품없는 나의 모습을 날마다 보고 사는 사람은 나 자신도 아닌 바로 남편이라는 사실에 미안하기 짝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저 없이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대체 뜬금없이 무슨 말을 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남편에게 나는 덧붙여 말했다.
“이렇게 볼품없는 나의 뒷모습을 당신이 바라보고, 살아주고, 견뎌주고 있으니 얼마나 미안하고 고마운지 몰라요.”
평소 유머가 풍부하고 농담을 하는 남편은 이제야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가끔 눈을 감아요.”
그날 우리 두 사람은 우하하하하 크게 웃는 것으로 그 민망한 순간을 잘 넘겼다.
우리는 날마다 낯을 씻고 거울을 들여다보고, 또 얼굴에 화장을 하며 거울을 들여다본다. 머리 스타일을 매만지며 또 거울을 들여다보고 외출하려고 옷매무시를 다듬을 때도 대부분 앞모습만 챙기는 게 보통이다. 더구나 집에서는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있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자연스런 마음이다. 밖에서는 어쩔 수 없이 긴장하고, 때로는 가장하고 연기도 하며 나 아닌 모습으로 살기도 하지만, 집에서는 나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사람들의 본연의 모습 아니겠는가.
성경의 창세기에서도 아담과 하와 부부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죄가 없을 때였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아무런 거리낌도 가려야 할 수치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제는 부끄러울 것도 가릴 것도 없는 편안한 사이가 되었지만, 왠지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변화를 시도했다. 바로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단장을 하기로 한 것이다. 말하자면, 아침에 일어나 처음 눈을 마주칠 때 유치원생처럼 손을 흔들며 “안녕~”을 한다. 밥상을 차리고 “식사하세요”라고 할 때 목소리를 한 톤 높여 종달새처럼 말한다.
설거지를 할 땐 어치피 뒤로 돌아 말없이 그릇을 씻게 되지만, 설거지 중간이라도 남편이 부르시면(?) 일단 빨간 고무장갑을 벗는다. 그리고 남편에게 다가가 얼굴을 들이민다. “부르셨어요” 하고. 그러다 보니 한 번 설거지 중간에서 두세 번은 멈추고 장갑을 벗게 되는 일도 있지만, 작정하고 실천하고 있다.
함께 지하철을 타고 나들이를 갈 땐 서로 손을 잡고 걸어본다. 예전엔 길을 걷다 손을 잡으면 복잡한 길거리에서 더 복잡하다면서 불편해 하던 남편도 이제는 나와 손잡고 걷는 느린 걸음을 즐기는 듯하다. 집안에서 마주칠 때도 공연히 뜻 없이도 빙긋 웃어주는 것, 가끔 그의 어깨와 등을 쓰다듬거나 감싸는 것, 이런 비언어적인 단장을 하는 것이다.
이런 나의 작은 변화들이 남편에게 어떤 기쁨을 주는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아직 확인해 볼 길은 없다. 하지만 쓸쓸한 나의 뒷모습을 열심히 단장하며 남편의 손을 꼬옥 잡고 함께 나이들어 갈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행복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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