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할수록 행복지수 낮다는데…
환승 할수록 행복지수 낮다는데…
  • 조종도 기자
  • 승인 2014.11.28 13:55
  • 호수 4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0여년 전 대학에 진학 해 처음 서울살이를 하며 마주친 것은 길고 힘겨운 통학시간이었다. 서울은 넓고도 넓어 하필 북쪽 끝에서 남쪽 끝으로 통학하려니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오며가며 만원버스에서 시달리다 숙소에 돌아오면 파김치가 돼 쓰러져 자곤 했다. 학교 근처에서 지내는 친구들이 부러운 건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무슨 수를 내지 않으면 안 되었고 기를 쓰고 기숙사에 머리를 디밀어야 했다.
전철이라곤 1호선 하나밖에 없던 시절에 통근이나 통학이라 하면 대개 버스 타는 걸 의미했다. 1980년대 중반 서울지하철 2~4호선이 개통되면서 형편은 크게 좋아졌다.
지금은 교통혁명이라고 부를 만큼 편리해지고 수단도 다양해졌다. 거미줄같은 지하철 망에 안 걸리는 동네가 없을 정도고 시내버스, 마을버스와의 연계성도 좋아졌다. 오히려 자가용 출퇴근자들이 막히는 길 때문에 짜증을 내는 게 달라진 풍속도.
문제는 서울문화권이 위성도시로 무한 확장된 것이다. 지하철, 전철망이 촘촘해지면서 교외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예전엔 꿈도 못 꾸었던 성남, 용인, 고양, 김포, 동두천에서도 아침․저녁으로 서울을 오간다. 그러니 세월은 바뀌었어도 통근․통학은 여전히 힘든 일이 되고 있다.
최근 서울연구원에서 서울시 출근자들의 대중교통 이용과 관련한 행복지수 조사 결과를 내놨다. 물론 결과는 예상한 대로다. 집에서 직장이 멀수록, 환승을 많이 할수록 대중교통 행복지수가 낮다는 것이다.
출근 거리가 5㎞ 미만인 단거리 직장인들의 행복지수가 73.9점으로 가장 높았고, 5~25㎞ 중거리는 71.6점, 25㎞ 이상 장거리 출근자는 70.1점이었다. 서울 시내에서 출퇴근하는 시민은 72.4점, 인천·경기 등 시외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이들은 70.2점이었다.
흥미로운 건 출근 거리보다 몇 번 환승하는지가 행복지수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환승을 한 번도 하지 않는 직장인의 행복지수는 75.6점으로 평균(71.3점)보다 훨씬 높았지만 환승 1회 70.7점, 2회 68점, 3회 66.1점으로 나타나 환승 횟수와 행복지수 사이에 상관관계가 뚜렷했다.
어떤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냐도 영향을 미쳤다. 지하철만 이용하는 직장인은 75.3점, 버스만 이용하는 이들은 74점으로 양호했으나 버스와 지하철을 환승하는 직장인은 67.5점으로 가장 낮았다.
사실 출퇴근 시간이 길다고 해도 자리에 앉아 넉넉하게 갈 수 있다면 견딜만하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거나 스마트폰을 이용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간단한 일처리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행복감이 저조한 것은 가장 혼잡한 9시대 출근자들이었다. 7시 이전이나 10시 이후 출근하는 이들의 행복지수가 73.4점인 반면, 9시는 69점, 8시는 71.4점으로 낮았다.
아침마다 미어터지는 출근 전쟁을 겪노라면 출퇴근 시간대를 다양화하고 환승역의 편의성을 높였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어떤 이는 대중교통 사각지대에 놓였다며 남모를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거미줄이라곤 해도 끊기거나 빙빙 돌아가는 길도 있기 때문이다.
이건 아주 자연스런 불만이고 요구다. 한데 순간 움찔해진다. ‘행복한 고민’이란 생각이 머리를 때린다. 출근 때 지하철역 ‘만남의 장소’에서 본 한 백발의 신사가 떠올라서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그곳 빈자리에 앉아 종종걸음 치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다. 초점 흐린 눈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눈빛이다. ‘나도 저들처럼 출근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배어나온다.
실직자나 더 일하고 싶은 은퇴자들에겐 출근 전쟁이란 오히려 희망사항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출퇴근 시간이 고통스러운들 직장 없는 설움만 하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