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땅 밟은 사할린 동포 2세들 따뜻하게 품다
고국 땅 밟은 사할린 동포 2세들 따뜻하게 품다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5.01.30 10:30
  • 호수 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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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 청수2단지 버들마을아파트경로당

일제강점기에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된 이들은 가족과 생이별하며 고국과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통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 이들의 후손을 품은 경로당이 있어 화제다. 대한노인회 충남 천안시지회 청수2단지 버들마을아파트경로당(이하 버들마을경로당)이다.

버들마을경로당의 회원 수는 총 45명, 그 중 33명이 평균연령 70대의 사할린 동포 2세다. 5년전 대한적십자사의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 사업을 통해 천안에 새 터전을 잡은 사람들이다.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한글을 쓰지 못하거나 고국의 문화에 취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버들마을경로당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글․한문 및 서예교육을 시작했다. 

▲ 버들마을경로당 채희두 회장(왼쪽 세 번째), 김창화 강사(오른쪽 세 번째), 신종한 본부장(오른쪽 맨 끝), 리옥순 천안시 사할린동포회 회장(왼쪽 두 번째) 및 회원 등이 서예교육 후 작품을 들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1월 23일 금요일에도 수업이 열렸다. 사할린 동포 회원들은 물론 주민 회원까지 20여명이 참여했다.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수업은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다. 교육 참여자들은 화선지에 정성스럽게 글자를 한 획씩 그어나간다.
리순옥 천안시 사할린동포회 회장(여·71)도 제법 그럴듯한 품새로 붓을 놀린다. 곧 ‘立春大吉’(입춘대길)이란 글이 화선지에 새겨진다. 만족스러운 듯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리옥순 어르신도 5년 전 고국에 들어온 사할린 동포 2세다. 한국어 구사에는 문제없지만 평생을 타국에서 살았던 터라 한국의 문화에는 어두웠다.
그는 “한자가 있다는 것을 경로당에서 처음 알게 됐다”면서 “붓을 처음 들었을 땐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나 요즘엔 즐기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는 다른 동포 회원들도 마찬가지”라며 활짝 웃는다.
이를 가능케 한 이는 채희두 경로당회장. 그는 평소 사할린 동포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천안시개발위원회 소속으로 각 기관단체장들과 만나며 관내로 유입된 동포들의 소식을 자주 접했다. 그때 채 회장은 꼭 그들에게 제대로 된 한국문화 교육을 시킬 것을 다짐했다. 여러 단체에서 행하는 교육들은 그 깊이가 덜해 제대로 된 우리문화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채희두 회장은 “대한민국 사람이기에 꼭 알아야 할 한글을 꼼꼼하고 자세히 알림과 동시에 한자 문화권인 우리나라의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매주 월·수·금요일 한글 및 서예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이 같은 성과는 다양한 도움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1월 회장직을 맡게 된 그는 총 88명의 관내 사할린 동포 전원을 회원으로 가입시키겠다는 뜻을 가슴에 품었다. 그러나 단지 내 위치한 경로당이 굉장히 협소했다. 전체 회원의 절반도 채 수용 못할 정도였다. 곧바로 관리사무소를 찾아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텅 비어있던 관리사무소 2층 도서관을 내줬다. 이렇게 해서 한글·서예교실이 탄생됐다.
교육 장소를 얻으니 또 교보재 확보 문제가 뒤따랐다. 이에 채 회장은 사비를 들여 먹, 벼루, 화선지 등 서예도구를 대량 구입했다. 여기에 김창화 강사, 신종한 경로당 본부장(총무)도 호주머니를 털어 힘을 보탰다. 아파트관리소장과 동 대표회장도 화선지를 지원했다. 또 채 회장이 지회장직을 맡고 있는 천안시사할린동포 후원회, 천안시개발위원회, 독지가 등도 재정 및 물품 지원에 나섰다.
이런 다양한 후원을 통해 총 1000매가 넘는 화선지와 교육 교보재가 마련됐다. 그 후 현재 3개월째에 접어든 교육은 비교적 짧은 기간임에도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는 등 성공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채 회장은 “동포 회원들 대부분이 한국문화 예찬론자가 다됐다”고 귀띔한다.
한편 이와 더불어 버들마을경로당은 인근 한양수자인·경남아너스빌·우미린아파트경로당과 ‘청수노인자원봉사클럽’을 조직해 매달 1회씩 환경정화 봉사도 펼치고 있다. 봉사 장소는 청수호수공원. 채희두 회장은 본 클럽의 공동대표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 사물놀이 공연중인 ‘청수버들 악극단’ 회원들.

또한 그는 지난 1월 9일 ‘청수버들 악극단’(단장 박승철)을 발족시켰다. ‘문화를 즐기며 전파하는 노인상’을 실현하기 위함이다. 회원들은 매주 토·일요일 경로당에 모여 악극뿐만 아니라 사물놀이, 한국무용, 난타, 색소폰 등 공연을 체험하며 배우고 있다. 강의는 15년간 한국무용을 익힌 그의 부인 김명자씨 등 회원 10여명이 담당한다.
이에 신안철 대한노인회 천안시지회장은 “전국적으로도 매우 드문 버들마을경로당의 행보에 감동했다”면서 “현재 무보수 봉사중인 강사진에게 보수를 지급하도록 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펼칠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채 회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하지만 곧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장담하며 비전을 제시한다.
“청수동 내 모든 사할린 동포분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키려면 한글·한문서예교실이 더욱 활성화 돼야 합니다. 동시에 악극단에 가입한 회원들이 실력을 갈고 닦아 강사 없이 자체 교육 및 공연이 가능하도록 발전해야 해요. 이렇게 되려면 1년은 더 땀 흘려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향후 행보를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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