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위해 희생한 소녀의 얼이 있는 곳
조국 위해 희생한 소녀의 얼이 있는 곳
  • 조상제 지하철 여행가
  • 승인 2015.02.27 11:11
  • 호수 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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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여행]<18>유관순열사유적지
▲ 유관순 열사의 재판기록문 등 다양한 자료를 볼 수 있다.

충남 천안시 병천에는 1만5000평 대지에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꽃다운 나이에 희생된 한 소녀를 추모하는 유적지가 있다.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를 태극기로 물들였던 유관순 열사의 비장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유관순은 1902년 천안에서 태어났다. 1915년 선교사의 소개로 이화학당에 편입후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를 벌였고,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자 만세운동을 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왔다. 천안‧연기‧청주‧진천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해 만세운동을 협의하고 아우내 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시위를 지휘하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됐다.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고문에 의한 방광파열로 옥사했다.
유관순열사유적지에는 추모각, 유관순기념관, 만세 부르는 모습의 동상, 초혼묘 등이 있다. 추모각은 유관순열사의 애국정신을 길이 추모하고 3‧1운동의 빛난 얼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으며, 독립운동의 산 교육장이다. 이곳에서 매년 순국일에 추모제를 거행하고 있다.
기념관에는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 이화학당 명예 졸업장, 생가 모형도, 고흥유씨 검상공파보(족보), 호적 등본 등 유관순의 신상에 대한 기록이 보존돼 있다. 또 경성복심법원 재판기록문, 수형자 기록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주요 인물의 재판기록문, 유관순열사 전기 등을 통해서 3‧1운동에 참여한 유관순이 겪어야 했던 고난도 엿볼 수 있다.
서대문 형무소 수감 당시 수형자 기록표로 사진에 보이는 열사의 모습은 고문으로 오른쪽 콧망울이 주저앉았고, 얼굴이 전체적으로 부어 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20살도 되지 않았다. 여고생에게 가한 일제의 무자비한 폭력과 이에 굴하지 않은 유관순의 모습에서 숙연함을 느낄 수 있다.
초혼묘는 유관순 열사의 영혼을 위로하는 묘지이다. 유관순이 1920년 10월 순국한 뒤, 그의 모교 이화학당의 주선으로 서울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하지만 일제가 군용지 사용이라는 이름하에 묘지를 파헤쳐 그녀는 죽어서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순국 69년 만인 지난 1989년 초혼묘를 봉안해 유관순의 영혼을 위로하게 된 것이다.
생가는 초혼묘에서 좀 떨어진 곳에 복원돼 있다. 생가지와 함께 봉화지도 복원됐다. 봉화지는 유관순 열사가 1919년에 매봉산 정상에 올라 다음날의 만세운동 거사를 알리는 봉화를 높이 들었던 곳이다.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도 만날 수 있다.
◆가는 길:1호선 천안역 하차 후 1번 출구로 나와 402번 버스 탑승해 유관순열사유적지 정류장 하차
◆관람료: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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