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에 온 뒤 전쟁터를 탈출한 느낌이 듭니다”
“호스피스 병동에 온 뒤 전쟁터를 탈출한 느낌이 듭니다”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5.04.10 10:34
  • 호수 4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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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부병원 ‘호스피스 병동’ 현장르포

“암 진단을 받은 후 병원에서의 삶은 병과의 싸움으로 인해 치열한 전쟁터 같았습니다. 그런데 호스피스병동은 달랐습니다. 내가 어떤 치료를 할지 선택할 수 있고 의료진들은 나의 말에 귀 기울여줬습니다.”
사망 원인 부동의 1위인 암은 해마다 22만명에게 발병 한다. 특히 말기암 판정을 받은 뒤에도 환자와 가족들은 병원 치료에 집착해 마지막까지 가장 큰 병원을 찾아 유명한 의사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받는다.

▲ 최근 무의미한 연명치료 대신 말기 암환자들의 신체적 고통을 경감시키고 그 가족들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문제 및 정서적 지지까지 돕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동부병원 호스피스 병동의 음악치료 모습.

‘무의미한 연명 치료’ 아닌 적극적 통증치료… 가족들의 마음도 치유
예술치료·원예치료·아로마요법 등 받아… 분위기 밝고 좋아

이렇듯 말기 암환자들은 총 진료비 약 3분의 1을 임종 직전 1개월 동안 지출하고 있는 상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자칫 환자에게 고통만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웰다잉’(Well-dying), 이른바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말기 암환자들의 신체적 고통 완화 및 정서적 지지를 돕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 힘든 과정을 감수하며 적극적인 치료를 받기보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인식이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완화의료란 말기 암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대신 증상과 고통을 경감시키며 환자와 그 가족들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 제공되는 의료서비스를 말한다. 항암제와 인공호흡기 등을 쓰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호스피스병동 하면 왠지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가 느껴질 것 같은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지난 4월 3일 기자가 서울시 동부병원 4층에 위치한 호스피스병동을 찾아갔을 때 이러한 예상은 가볍게 빗나갔다. 오히려 밝은 분위기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 치료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환자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산재형 호스피스 형태로 시작된 서울시 동부병원의 호스피스병동은 지난해 7월부터 1인실 3개, 2인실 1개, 5인실 7개(무료 간병인실 1개, 유료 간병인실 3개), 임종실 1개 등 총 40병상으로 확대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완화의료전문기관으로 인정받은 전국의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중 가장 많은 병상 수다.
호스피스병동 내에는 임종실, 가족실, 프로그램실, 상담실, 야외정원 등의 시설이 갖춰졌으며, 음악치료와 미술치료, 원예치료, 아로마요법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또 의사 2명, 간호사 17명, 사회복지사 1명, 성직자 3명, 자원봉사자 70명 등으로 이뤄진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가팀이 상시 대기하고 있다.
이들은 통증 등 환자를 힘들게 하는 신체적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하고 환자와 가족의 심리사회적, 영적 어려움을 도와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경감시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생명의 길이를 인위적으로 연장 또는 단축시키지 않고 생명의 질에 초점을 맞추면서 케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말기 암환자가 부딪히는 의학적인 문제 해결에서부터 호스피스를 전공한 전문 간호사의 전문적인 간호 상담, 무료 간병인 및 경제적인 문제 상담, 목욕, 이·미용, 발 마사지, 대화 나누기 등 자원봉사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호스피스병동 입원 환자의 보호자인 김 모씨는 “처음 어머니를 호스피스병동에 맡겼을 때는 꼭 내가 어머니의 병을 포기하고 버린 것 같은 마음에 괴로웠다”며 “그러나 여러 사람이 돌보아 주는 걸 보면서 ‘아! 오히려 나보다 더 편하게 해주시는 구나’하고 안심을 했다”고 말했다.
김영신 서울시 동부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은 “여러 분야에 있는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신체 증상 조절과 심리적 치료에 힘쓰고 있다”며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분들에게도 사회복지사와의 상담을 통해 무료 간병 서비스와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스피스병동은 통증치료를 위주로 한다. 말기 암환자들의 70~80%가 대부분 통증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에 항암치료는 받지 않더라도 환자를 힘들게 하는 통증, 구토 등은 적극적인 통증치료를 통해 조절하고 있다. 이러한 환자들에게 처치를 위해 하는 치료는 오히려 환자들의 심신의 고통만 증가시킬 뿐이다.
호스피스병동에 입원 중인 장 모씨는 “통증만 없어도 내가 말기 암환자란 사실을 잊어버렸을 것”이라며 “그런데 그렇게 무시무시했던 통증이 호스피스병동에 입원하면서 거짓말 같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사별한 유족들에 대한 사후관리 서비스도 진행하고 있다. 호스피스병동 의료진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전화, 편지를 수시로 보내는 것 외에도 각 가정을 방문해 사별 후 겪는 슬픔이 최소화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순기능이 많은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호스피스를 대안으로 생각하는 인식은 아직 사회 전반에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무엇보다 환자 본인이 ‘호스피스=죽음’으로 받아들여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끝까지 치료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이고 효도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김 과장은 “호스피스병동은 마지막 살아있는 시간만이라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관하면서 살 수 있게끔 도와드리고 있다”며 “살아 있는 동안에는 풍성한 삶을, 마지막 순간에는 평화로이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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