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하고 섬세한 여의사… 의료계에 여풍 부는 건 자연스런 현상”
“꼼꼼하고 섬세한 여의사… 의료계에 여풍 부는 건 자연스런 현상”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5.05.22 13:15
  • 호수 4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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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숙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의사 집안에서 자라나 어려서부터 의사 꿈꿔… 현미경 좋아해 내과 선택
예전 여의사는 산부인과 수술밖에 못해… 이젠 흉부외과‧정형외과도 진출

의료계에 ‘여성 파워’가 거세다. 최근 주요 의료기관 수장에 여성들이 잇따라 선임되면서 사회 각 분야에 불고 있는 ‘여풍’이 보수적인 의료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2013년 말 보건복지부에 면허를 등록한 의사는 11만5127명이며 실제 현업 종사자는 9만9396명이다. 이 중 여의사는 2만3094명으로 전체 2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의사 10명 중 2명이 여성인 셈이다.
여의사 수가 증가한 만큼 역할 또한 늘어나고 있다. 최근 의료계는 서울시의사회장에 김숙희 원장이 당선되고, 국립의료원장에 안명옥 원장이 취임하는 등 사상 첫 ‘여성’ 타이틀을 단 대표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
여의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질 수 있는 데에는 여의사들의 수장인 김화숙 한국여자의사회장(69)의 공이 크다는 게 의료인들의 평가다. 지난 1971년부터 의료계에 몸 담아온 김 회장은 탁월한 리더십으로 여의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고, 2014년 여의사회장에 취임한 뒤 여의사들의 새로운 의료문화 구축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5월 중순 김 회장을 만나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의사집단에서 40여년간 여의사로 살아올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들어보았다.

-의사가 된 계기는.
“아무래도 집안의 영향이 컸습니다. 아버지, 오빠가 다 의사였고 큰아버지와 올케언니도 의사였죠. 어렸을 때 아파서 큰댁에 갔는데 올케 언니가 주사를 맞춰주고 약을 주니 금방 낫더라고요. 그렇게 주사를 놔준 올케언니는 바로 의사 가운을 벗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멋져보였어요. 또 집안이 전부 의사이다 보니 자연적으로 의사가 되겠다는 꿈이 막연히 있었고요. 자라면서 한 번도 제가 의사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아요.”

-내과를 전공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1976년 국립의료원에서 내과 수련 과정을 마치고 현미경을 보는 것이 좋아 혈액종양내과를 전공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혈액종양 분야의 환자들은 완치라는 단어를 말할 기회도 없이 세상을 떠나보내야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백혈병이라고 하면 먼저 죽음부터 생각났을 때였으니까요. 현미경 보는 것이 좋아 선택했던 전공이 내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게 개원의 직접적 동기인지.
“네. 국립의료원에서 근무할 당시 죽음을 맞는 환자들을 많이 보면서 점점 내 자신이 건조해지고 차가워진 ‘냉혈동물’이 되가는 것 같았습니다. 정이 들면 이별을 해야 하는 아픔을 더는 견딜 수 없어 결국 13년 뒤 혈액학 진료실을 떠나 서울 반포에 내과 의원을 개원하게 됐습니다.”

-자녀들도 의사인가.
“현재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저희 집안사람 모두 내과 의사인데요. 남편은 대학병원에서 심장내과 의사로 근무 중이고 쌍둥이 아들 둘과 그 며느리 둘도 내과 의사입니다. 내과의사만 6명인 집안인거죠. 그 중에 첫째 며느리가 소화기내과 전공을 해서 현재 같이 병원을 운영 중에 있습니다.”

-의사생활 중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국립의료원 시절부터 21년 동안 지켜봤던 여성 환자가 있습니다. 혼합성결합조직질환을 앓는 환자였는데 21년을 제 옆에서 상담하며 지시를 따르고 처방에 따라 하루하루를 가까스로 지냈습니다. 아름다운 청춘을 병마와 싸우며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접어야 했고 남자 친구가 있어도 미래가 두려워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저는 그의 주치의 이전에 동네 친한 언니, 친구였습니다.”

-특이했던 환자 진료 경험이 있나.
“지난 2009년 심장학회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갈 때의 일입니다. 비행기 안에서 63세의 미국 여자가 심한 복통과 구토, 설사로 쓰러지는 상황이 발생했어요. 당시 탑승자 중엔 30여명의 의사가 있었는데 내과 의사는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승무원의 다급한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환자에게 간 저는 단순 위경련을 의심해 비상약으로 준비했던 약을 먹였습니다. 10분 후 승무원이 다시 오더니 환자가 그 약을 먹고 다 토했다고 알려줬습니다. 고혈압 환자였던 그에게 일단 금식을 시키고 똑바로 눕힌 상태에서 추이를 지켜보았습니다. 환자가 목마르다는 호소를 했지만 증세 호전을 위해 설득하고 안정을 취하도록 했지요. 그 후 환자는 상태가 호전돼 휠체어를 타고 안전하게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었습니다. 비록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지 못한 비행이었으나 창공에서 발병한 외국인을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도착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 뿌듯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여의사들의 비율이 점점 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에 비해 남녀 차별이 많이 해소되면서 여의사들의 진료과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 한 몫 한 것으로 보입니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여의사가 수술할 수 있는 과를 산부인과로 한정시키는 병원이 있는가 하면 여의사는 일반외과, 정형외과 등엔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10년 새 흉부외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등 외과 분야에서도 여의사의 진출이 늘고 있고 금녀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비뇨기과에도 여의사 배출이 늘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의사도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서 사회활동을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꼼꼼하고 섬세한 여성적 특성이 장점으로도 작용했죠.”

-의사단체에서도 여풍이 거세다.
“여의사들의 의료사회 진출은 남자 의사들보다 5~10년 정도 늦습니다. 여의사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돌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비난받지 않고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남자 의사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 것도 이유이죠.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여의사에게는 두꺼운 ‘유리천장’(여성들이 직장 내에서 겪는 보이지 않는 차별의 장벽)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젊은 여의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개선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젊은 여의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여의사 수가 점점 늘어나 과거에 비해 여의사 복지에 관심이 많아졌지만 각 과에서는 여전히 여의사 수를 제한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의사가 많으면 출산휴가로 인해 결원이 발생해 업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인기 진료과나 업무 강도가 센 진료과들은 아무래도 여자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좁습니다. 젊은 여의사들은 이들의 처우에 대해 불만을 가지면서도 제도적으로 교정해달라고 요구하는 데 있어서는 소극적입니다. 여의사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 회장은 여의사들이 경험을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때 ‘유리천장’도 깨진다고 말한다. 남녀의 역할이 공공연하게 자리매김한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여성들의 도전이 필요하며 이를 여의사들과 교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 회장은 후배 의사들과의 멘토링 시스템은 물론, 의사를 꿈꾸는 중‧고등학생들과의 멘토링 시스템도 계획 중에 있다.

-어르신들의 건강관리를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지.
“진료를 보다 보면 ‘이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라는 말을 하시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어르신들의 건강관리는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는데요. 치료가 가능한 질환은 조기에 발견해서 되도록 빨리 치료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라에서 해주는 무료 건강검진이라도 잘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을 갖고 있는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관리해주는 것이 필요해요. 이를 위해 집 근처 가까운 병원에 나의 과거 병력을 잘 알고 있는 주치의를 만들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언제까지 진료실을 지킬 생각인지.
“은퇴는 아직까지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은퇴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납니다. 현재 가정과 병원, 여자의사회를 동시에 꾸려가느라 힘들긴 하지만 현재의 삶이 너무 행복합니다.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진료를 보고 싶습니다.”

-백세시대 독자들에게 한 마디.
“진료실에서 의사들은 다양한 모습의 환자들을 만납니다. 눈으로 혹은 손끝으로 환부를 보고 느껴볼 뿐만 아니라 청진기를 대고 환자들 몸 속의 내밀한 소리를 듣기도 하죠. 환자들의 육체적 아픔과 정신적인 고통을 체감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슬픔과 좌절도 함께 느끼게 됩니다. 건강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것입니다. 철저하게 미리미리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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