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의 작가 헤세, 그는 고흐를 따른 화가였다
‘데미안’의 작가 헤세, 그는 고흐를 따른 화가였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5.22 13:38
  • 호수 4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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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쟁기념관 ‘헤세와 그림들 전’
▲ 헤세가 그린 티치노의 가을(1920). 이번 전시는 ‘작가 헤세’가 아닌 ‘화가 헤세’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12m 스크린에 3D 영상으로 구현한 헤세의 그림들 볼만
어릴적 사진, 로맹롤랑과 주고받은 편지 등 500여점 공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새에게 하나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1877~1962)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문장이다. ‘에밀 싱클레어’의 내적 성장과정을 그린 ‘데미안’은 성장통을 앓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헤세는 작가로 활동하면서 그림도 활발히 그렸지만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 듯 작가라는 이름에 감춰져 있던 ‘화가 헤세’를 끄집어낸 전시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헤세와 그림들 전 :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오는 11월 1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헤세의 초대’, ‘방황과 고통’ ‘우정과 사랑’ ‘치유와 회복’ ‘평화와 희망’ 등으로 테마를 나눠 헤세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그의 그림을 소개한다.

▲ 전시에서는 가로 1.5m에서 최대 12m에 이르는 스크린 26개에 헤세의 미술 여정을 장대하게 펼쳐 놓았다. 사진은 전시장 풍경.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헤세의 그림을 ‘컨버전스 아트’로 구현한 것이다. ‘컨버전스 아트’란 명화를 디지털화 한 동영상으로 원작이 주는 감동을 영화처럼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전시는 천장까지 꽉 채운 가로 1.5m에서 최대 12m에 이르는 스크린 26개에 헤세의 미술 여정을 장대하게 펼쳐 놓았다. 헤세가 그린 원작 회화를 살아 움직이는 그림처럼 만든 영상물은 상영시간이 총 300여분에 달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로 6.4m, 세로 4m의 거대한 스크린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스크린에서는 헤세가 1920년대 스위스의 몬타뇰라에서 살 때 그린 풍경화를 ‘컨버전스 아트’로 구현한 영상이 상영된다.
‘헤세의 거리’라는 제목의 영상은 시를 쓰기 위해 신학교를 뛰쳐나온 헤세가 긴 방황 끝에 작가로서 성공하고 스위스 몬타뇰라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야기를 3분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인상파 화가의 따뜻한 화풍이 느껴지는 영상은 첫 번째 아내를 잃고 괴로워하는 모습부터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작가로서 빛을 보는 순간 등을 함축적으로 선보인다.
안으로 더 들어서면 헤세의 또 다른 풍경화 ‘카사카무치’(1930)의 컨버전스 아트도 만날 수 있다. 가로 11m, 세로 4m의 스크린은 원작이 어떤 과정을 거쳐 3D영상으로 바뀌는 지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헤세는 반 고흐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많이 받아 그의 화풍을 모방한 풍경화를 많이 남겼다. 1917년에 그린 ‘베른 근교의 멜헬뷜베르크의 집’을 비롯해 ‘카슬라노 근처 가을’(1920), ‘호수골짜기의 풍경’(1930년), 겨울의 스산함을 담은 1933년 작 ‘눈 덮인 계곡’ 등의 풍경화를 3D로 재현했는데 고흐의 그림과 비교해보면 흥미롭다.
또 헤세가 몇 점 남기지 않은 인물화도 소개하고 있는데 이중 자화상을 컨버전스 아트로 선보인 것이 볼만하다. 헤세의 붓 터치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분석해 헤세가 직접 눈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영상으로 재현하고 있다.
헤세의 그림이 디지털기술과 만나 최첨단 영상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면 헤세가 남긴 유품들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자극하며 헤세가 살아있던 때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한다.
소장품 수집가로부터 대여한 헤세의 유품 500여점이 전시관을 채우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헤세의 유품이 2000여점 정도 남아있는 것을 감안할 때 적지 않은 규모다. 헤세 소설의 초판본을 비롯해 가족사진, 지인에게 보낸 그림엽서, 글과 편지를 쓸 때 사용했던 타자기와 안경, 늘 지니고 다녔다는 약통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또한 ‘마의 산’으로 알려진 소설가 토마스 만과 아카데미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극작가 로맹 롤랑과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 연세대 마광수 교수가 직접 그린 초상화 등도 만나 볼 수 있다.
이밖에 헤세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타계 일주일 전 남긴 엽서 ‘꺾인 가지’도 눈에 띈다. 쇠잔한 나무를 그리고 그 위에 적은 ‘너무 긴 생명과 너무 긴 죽음에 지쳐 버렸다’는 글귀는 긴 여운을 남긴다.
아울러 전시장 내에서는 사진촬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또 곳곳에는 누워서 편히 관람할 수 있도록 쇼파도 마련돼 있어 편안하게 전시를 즐길 수 있다. 관람료 1만5000원.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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