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과 한국 문단의 씁쓸한 동반 몰락
신경숙과 한국 문단의 씁쓸한 동반 몰락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6.26 16:39
  • 호수 4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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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과 (제 소설)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 본 결과, 표절 문제를 지적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신경숙이 지난 6월 2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표절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근데 이상하다. 자신이 맡고 있는 심사위원직을 모두 내려놓고 자숙에 들어가겠다고 밝히며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명백하게 진실을 밝히지는 않은 것이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아리송한 말로 두루뭉술하게 표절을 인정하는 자세를 취했다.
‘엄마를 부탁해’를 통해 밀리언셀러 반열에 오르며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신경숙이 나락으로 떨어진 건 지난 6월 16일에 보도된 한 기사에서 시작됐다. 소설가 이응준이 한 매체에 신경숙이 여러 차례 표절을 했고 문단에서는 암암리에 알려진 사실이라고 폭로한 것이 문제가 된 것.
이응준이 제기한 ‘우국’과 ‘전설’의 문제가 된 문단은 다른 환경에서 자라 조금 생김새가 달라진 일란성 쌍둥이를 보는 것처럼 닮았다. 짧은 한 문장이 비슷할 수는 있지만 한 문단이 통째로 그것도 문장의 배열까지 똑같다는 건 베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지적했다.
여론은 삽시간에 악화됐고 불길은 문단에 팽배한 문학권력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신경숙의 남편인 시인 남진우는 우리나라 3대 문학잡지 중 하나인 ‘문학동네’의 편집위원으로 문단 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다. 또 신경숙은 여러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에 잡지에 실리고 문학상을 받아야 작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다른 문인들이 이 부부에게 대항을 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는 슬픈 의혹마저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영향력 있는 문인들이 모여 세월호 사건을 비판하는 ‘눈먼 자들의 국가’를 발간했다. 대중들은 시원하게 정부의 처신을 비판한 이들에게 환호했다. 하지만 이들은 신경숙 사태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이응준은 이에 대해 ‘침묵의 카르텔’이라는 표현을 썼다. 잘못을 알고 있어도 자신이 살기 위해 눈감아 준다는 말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어수선한 시기 한국문학은 대중들을 위로했지만 이제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거란 막연한 생각으로 문인들이 임한다면 ‘한국문학’ 자체가 잊혀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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